<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유명한 책이다.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담당한 나치 친위대(SS) 상급 돌격대 지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수송에 종사했을 뿐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56p
사람들은 그가 끔찍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평범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악의 평범성"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책 자체가 읽기 상당히 어렵다. 단어는 낯설고, 말은 빙빙 돌고, 번역조차 매끄럽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텐데, 바로 여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능가하는 책이 있다. 바로 숨겨진 보석 <자백의 대가>이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겸손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며 매사에 성격이 꼼꼼한 학생... 또 같은 반 학우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는 모범생.... 시간 개념이 철저했다..... 그 친구는 참 순했어요. 말도 많지 않았어요. 우리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냈고, 청소를 시켜도 묵묵히 잘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367 p
그는 수학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이 되어줬어요. 학생들이 선생님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선생님 수업이 있을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252p
그는 주어진 일도 성실히 하는 남자였다.
"똑똑하고 교양 있고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 일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열심히 노력하며 사소한 것까지 꼼꼼하게 신경 쓰는 사람, 일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사람, 모든 방면에 프로 정신을 보이며 상부를 만족시키는 성과를 보여주고자 애쓰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일에 대체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 27p
그는 자신을 포함해 부모님과 식구들, 제 조국의 국민을 자유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혁명군에 가담한다.
1975년 크메르 루즈(캄푸치아, 그러니 캄보디아 공산당, 일인자 폴 포트)가 캄보디아를 장악한다. 그리고 새로운 혁명의 나라를 건설한다.
자본주의가 본격화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완벽하게 형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캄보디아 공산당은 화폐 제도를 폐지하고 급진적인 농업 개혁을 일으켰다. 그들이 잡은 벼 생산량 목표는 터무니없었다. 또 기업들은 공산당이 휘두르는 채찍과 총검의 위협 아래 회사를 운행해야 했다. 그러나 고위 지도자들은 이런 정책들보다는 정권의 계획 실천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나 시대를 잘못 태어난 인물들을 제거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기근이 만연했고 캄보디아 공산당식 경제 이론을 적용한 결과 심각한 폐해가 발생했던 이유도 알만했다.
크레이그 에치슨이 그 당시에 한 지역의 장이 중앙정부에 보낸 전보 내용을 분석한 결과, 반 페이지 가량이 경제 발전에 대한 내용이었고 또 반 페이지는 생산 상황에 대한 보고자료였다. 그리고 내부의 적과 관련된 내용이 5 페이지를 이루었다.... 그들은 반역자를 잡는 데 온 힘을 기울였고, S-21은 그 고되고 끝을 알 수 없는 추격의 중추였다. 134 p
내부의 적을 소탕하기 위해 전국에 200개나 넘는 수용소 아니 교도소를 세운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S-21이다.
"죄를 지은 개인을 체포한 다음 감옥에 끌고 와 죄수로 등록시킨다. 그런 다음 감방에 보내 구금시키고 나서 심문과 고문을 거쳐 자백을 받아낸다. 마지막으로 사형장으로 이송한 다음 형을 실행한다." 325p
학교를 개조한 S-21 교도소에서 1만 4000명이 죽어 나갔다. 일단 수용소에 들어가면 다른 선택은 없다. 아이도 예외가 없다.
"1977년 7월 23일, 160명의 어린이가 곧장 쯔엉 엑(킬링 필드)으로 보내져 사형당했다. 이유는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크메르 루즈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고 죽은 부모 대신 키우기에는 양육비가 무척 많이 들어서였다." 350p
캄보디아 하면 사람들은 앙코르와트, 거기에 킬링 필드(쯔엉 엑)를 떠올린다. 킬링필드 관련 사진을 보면, 해골만 모여 있다.
"일단 죄수에게 구덩이 옆에 무릎 꿇고 앉으라고 명령해요. 그런 다음 죄수의 목 뒤를 굴대로 내려칩니다. 마지막으로 목을 벤 다음 옷을 벗기고 수갑을 풀어줘요." 207p
그래서 저렇게 해골만 모아둘 수 있었다.
프놈펜에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쯔엉 엑(킬링 필드)에 처형장을 만들기로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모범생이자, 아이들에게 훌륭한 모범 수학 선생이었고, 맡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며, 조국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혁명군에 가입한 S-21의 교도소장 두크였다.
썩은 시체들로 시내에 온갖 전염병이 발생한 것을 우려한 두크는 교도소 책임자로서 적절한 곳에 사형 집행장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고 여겼다. 209p
보관 상태가 매우 훌륭한 그의 기록에 따르면, S-21은 효율성과 근대성, 전문성 이 세 가지 기준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교도소였다. 97p
"제 본명은 깡 켁 이우이지만 혁명군에 들어가면서부터 두크란 이름을 썼습니다. 저를 포함해 부모님과 식구들, 제 조국의 국민을 자유롭게 한다는 명분으로 혁명군에 가담했지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 조국은 참담한 비극을 겪어야 했고 17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정의를 믿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몸담았던 캄푸치아 공산당이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어요. 도망쳐 나올 수도 없었고 무조건 상급 기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으니까요. 저는 감옥에서 사람들을 심문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결코 내 손으로 누군가를 죽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죽이진 않았어도 분명 저 대신 다른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죠. 단지 제 손에는 펜이 들려 있었고 제 손놀림이 한 사람의 생사를 결정했어요." 23p
두크는 아이히만에 비해 억울한 점이 있다. 아이히만은 "다른 부대로 전근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임무를 회피하는 것은 가능했다. 분명한 것은 개개의 경우 어떤 징계성의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에 위협을 가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두크는 달랐다. 경우 그가 일을 거부하거나 조금이라도 잘못하거나, 아니 그냥 운만 조금 나쁘면 바로 수용소행이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S-21 교도소의 창시자, 안보부 수뇌였던 숀센도.. 반역자 취급을 당하고, 이미 전 소장인 낫Nath에 이어 3인자도 자취를 감추었다.
증인들 가운데 그 당시에 도주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 봤자 언젠가는 체포될 거예요. 제가 멀리 도주하는 데 성공할 경우, 제 가족과 이웃들을 가만두겠어요?" 118p
1978년 말 두크와 가까운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목숨을 잃었다. 두크는 머지않아 자기 치례가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127p
"모두 상부의 명령을 들어야 했어요. 안 그랬다가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 상황이었으니까요..... 저를 비롯해 우리 모두 피해자였어요." 216p
"크메르 루즈가 한 범죄가 바다라면 제가 한 과오는 그 바다에 흘러간 물방울이었죠." 265p
1979년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크메르 루즈를 몰아낼 때까지 S-21 교도소에서는 1만 4천 명이, 캄보디아 전역에서는 170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이 학살당했다.
"이곳에 들어온 죄수 중에 살아서 나가는 사람은 없었어요. 모두 죽어서 나갔죠." 55p
30년이 흐른 후, 춤 메이와 부 멩, 완 낫 이렇게 세 명만이 교도소 시절을 증언할 수 있는 죄수들 가운데 아직까지 살아있는 생존자다. 239p
크메르 루즈와 폴 포트는 왜 사람들을 죽였을까?
"폴 포트가 의도한 바는 어쩌면 매우 숭고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최악이었죠." 139p
"공산주의가 대체 뭐기에 그랬냐고 물었죠. 지금은 저도 그게 뭔지 잘 알아요. 그것은 질투와 경쟁, 학살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지요. S-21 교도소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 배신, 측근을 고발해 사형장에 끌려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죠." 222p
"캄푸치아의 공산당에 반대하는 자들을 가리켜 CIA라고 불렀소." 90p
공산주의란 인간을 자유롭게 해방시킨다는 이념 이건만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범주에 장애인, 환자, 광인, 동성애자, 종교인, 지식인은 포함되지 않는 게 분명했다. 96p
"자백이 모두 진실일 거란 생각은 정말 하지 않았어요. 상임위원회조차 완전히 믿지는 않았어요. 그들에겐 그저 장애물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으니까요."124p
크메르 루즈 정권하게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112p
S-21 희생자들의 약 80 퍼센트가 크메르 루즈에 맹목적으로 충성을 다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왔던 당원들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만약 이들이 형을 받아 목숨을 잃지 않았다면 오늘날 피고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310p
'지옥의 군대'를 이끌었던 칭기즈칸, '대약진운동'으로 자국민을 굶어 죽인 마오쩌둥, '대숙청'으로 유명한 스탈린조차 크메르 루즈(캄보디아 공산당, 지도자 폴 포트)의 만행에는 미치지 못한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700만 전후였는데 적게는 100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이 학살당했다. 전 국민 4명 중에 한 명이 사라진 것이다.
킬링필드와 수용소의 실체가 밝혀질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수용소 소장인 두크가 아주 뛰어난 행정가였기 때문이다. 그가 빈틈없이 수용소를 관리하며 꼼꼼하게 "자백을 이끌어내는 심문 과정의 기록물, 사진, 신상"을 적었고, "풍부한 내용과 대단한 양의 감옥 기록부가 없었다면 민주 캄푸치아의 기록된 역사는 지금처럼 확실하고 명료하지 않았을 것이다." 101p
이 두 책은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부터, 상부에서 시킨 명령을 따라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면 죽음밖에 없는 상황에서 명령을 따르는 건 유죄인가, 무죄 인가까지.
"어떤 면에서는 내가 저 입장에 처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게 우리 인간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고요.. 그게 다예요. C'est tout." 293p
그렇게 크메르 루즈가 몰락한 후, 교도소를 도망친 두크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그는 재판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책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살아있는 디테일, 인물 묘사에 전반적인 흐름까지. 책으로서 <자백의 대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보다 월등히 뛰어난 책이다. 다만 늦게 나왔을 뿐이다. 청출어람이다. 캄보디아 근 현대사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면 책 뒤에 있는 캄보디아 현대사를 먼저 읽으면 된다.
마침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 원리 주의자들인 탈레반이 집권했다.
게다가 모든 결혼은 당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173p
모든 여성이 단발머리를 해야 했고, 단색으로 통일한 옷을 의무적으로 입어야 했다. 한눈에 봐도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을 파괴하는 조치였다. 408p
크메르 루즈 치하의 캄보디아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같다. 또다시 인류의 비극이 시작될 예정이다.
<미군 수송기로 아프간을 떠나는 사람들>
정권의 본질은 그들이 부르짖는 원칙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권에서 강요하는 사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본질은 정권이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삶 속에 있다. -레몽 아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