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쇄(玉碎)와 반자이(萬歲)

일본 태평양 전쟁의 참혹사

by 빛나리의사

책 제목 "전원 옥쇄(玉碎)하라."에서 옥쇄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라.'는 뜻으로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이 패망에 가까워지자, 군인에게 "반자이"와 함께 내려진 명령이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의해 섬에 봉쇄되고, 보급마저 끊기고 포위된 상황에서, 미국이 함포와 공군이 무지막지한 포격과 공습을 가하며 상륙작전을 펼치는 상황에서 일본군의 전략은 "텐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총검을 장착한 채 돌격하여 옥쇄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질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검으로 미군을 베기도 전에 기관총과 대포, 폭격, 함포 앞에서 처참하게 전멸한다.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 전쟁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분위기 반전을 이룬 이후로 과달카날 해전에서는 완전히 승기를 잡고 그 이후로는 사실상 학살에 가까운 전투가 벌어진다. 얼마나 압도적이면, 한 전투 이름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었다.

만화는 1945년 6월 뉴브리튼섬, 일본의 핵심 전략 기지인 라바울 입구인 코코포와 세인트 조지곶 와랑코이 강 입구에서 벌어진 전투?라기보다는 일본군 전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그리고 있다. 2021년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나왔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라바울을 아는 사람에게는 가볍고,
라바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겁다.

먼저 라바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책 내용이 어렵다. 낯선 지명(라바울, 코코포,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세인트조지곶)과 당시 일본의 상황과 미국의 진격 상황(1945년 6월 일본 패망 직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몰입이 되지 않는다.


<좌: 책 배경이 되는 브리튼섬의 라바울, 우: 라바울, 코코포, 와랑코이만>
<배경에 나오는 강이름으로 지도에서 확인, 오류가 있을 수도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반대로 일본의 태평양 핵심 전략 기지이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 한 번 없었던 일본의 실책이자, 미군의 개구리 뜀뛰기 전략의 성공을 보여주는 '라바울'을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은 새로운 내용이 없다. 미국의 개구리 뜀뛰기 전략이란 일본군의 중요 거점 중 일부만 점령하고 나머지는 항공력 등으로 무력화하면서 급속 전진하는 작전이다. 실제로 천연 요새였던 라바울에서 일본이 10만의 병력으로 결사 방어와 항전을 다짐하지만 미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라바울을 공격하지 않는다. 일본의 착이자, 미국의 전술 승리다. 여튼 라바울을 알 정도면, 학살에 가까운 미군과 일본의 각종 해전 결과와 전투 양상, 그리고 일본의 터무니 없는 전략과 전술을 다 안다. 1억 옥쇄, 총검술, 텐노 헤이카 반자이!, 인간 어뢰, 가미가제 등.


첫 출간된 1970년대 초라면 여러모로 각광받을 책이지만, 50년이 지난 2021년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거기다 만화책으로서도 극세밀화가 대세인 시점에서 인물의 표정과 캐릭터가 이미 한참 유행이 지났다. 인생은 타이밍인데. 배경의 디테일은 정말 꼼꼼한데, 인물 묘사는 정반대이다. 이는 요괴? 작가인 미즈키 시게루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번 만화에서는 오히려 브레히트의 거리두기 기법을 써서 과도한 몰입을 막는 하나의 장치로 쓰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일본에서 저런 책이 나왔다는 건 칭찬을 넘어 존경심마저 든다. 아직도 대동아공영를 주장하며 화려했던? 과거의 대일본제국을 회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일본에서 사실을 직시하고 일본이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을, 그리고 어리석기 짝이 없음을 인정하기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야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작가로서 인기는 물론이고 목숨을 걸어야할 수도 있다. 거기다 실제 태평양 전쟁에서 한쪽 팔을 잃고 만다.)


일본의 세계 2차 대전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태평양 전쟁에 대해서는 전 톨런드의 <일본 제국 패망사>, 중일 전쟁에 대해서는 <중일 전쟁> 이 두 권을 추천한다.

<중일 전쟁>은 같은 제목의 책이 두 권 있는데, 전문가인 래너미터 가 쓴 <중일 전쟁>보다 아마추어인 권성욱 씨가 쓴 <중일 전쟁>을 추천한다. 더 이해가 쉽다. 군 수뇌부가 궁금하다면 <쇼와 육군>도 있다. 물론 천황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이러다가 책을 너무 많이 소개하게 되니까, 여기까지.

사실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래 두권이다.

<강추, 또 강추!!!!!!>

디테일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어느 하급 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을 보면 세부 전략에서 일본 육군 수뇌부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일개 병사 입장이 궁금하다면 <산산조각 난 신>을 추천한다. 글 항아리에서 나온 책으로 최소 두 번은 읽어야 할 책들이다.


옥쇄(玉碎)와 반자이(萬歲)를 주장한 사람은 패전 후 어떻게 되었을까?


도조 히데키 대장이 자살하려다 실패했다. 듣자 하니 전범으로 체포당하기 직전에 권총으로 심장을 쐈는데, 총알이 급소를 피하는 바람에 죽지 못한 채 그대로 미군 병원에 수용됐다고 한다.......

육군대신이었을 때 그는 스스로 [전진훈]이라는 것을 공표하고 전군에 전장의 계율로 삼으라고 하지 않았던가.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고, 죽음으로써 죄스러운 오명이 남지 않게 할지어다.”

전진훈에는 이런 구절도 있건만, 그 훈령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공표한 본인이 깨뜨리지 않았는가.

군인으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육군 대장이 생계 수단인 권총 하나 제대로 못 쏴서 적의 포승줄에 묶였다. -산산조각 난 신 47 p-


우리는 이런 전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나는 배운 것을 곧이곧대로 머릿속에 받아들였고, 또 그것을 모조리 나 스스로 생각해냈다고 믿어버렸다. 그래서 아예 의심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OO에게 배신당한 것은 사실 OO을 그런 존재로 믿었던 나 자신에게 따질 일이다. 나는 현실의 OO이 아니라 내가 멋대로 내 안에 품었던 허상의 OO에게 배신당했다. 말하자면, 내가 나를 배신했던 것이다. 나 스스로 자신을 속였던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오로지 OO만 비난함으로써 나 자신은 ‘선하다’고 여기려는 우쭐함과 도피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OO을 탓하려면 그토록 믿었던 나 자신도 함께 탓해야 한다 거기서 자신을 빼놓으면 OO을 규탄해봤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랬다가는 기껏해야 잠깐의 분풀이나 사적인 푸념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고는 이걸로 다 끝났다고 여길 테고, 시간이 흐르면서 까맣게 잊어버릴 테고, 결국에는 언젠가 또다시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산산조각 난 신 294p-

OO 칸에 들어가는 단어는 독자에게 남긴다.



책 내용과 실제 사실은 엔딩이 조금 다르다. 참고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