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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an 06. 2022

 추위를 녹이는 단 한 마디

선별 진료소에서 

 이화, 유림, 예지, 유정, 배영, 경의, 새말, 동오, 신동. 윤동주가 검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그리운 사람 이름을 부를 때, 저는 주황색 천막의 선별 진료소에서 하얀 종이에 적힌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학교와 유치원 이름을 부릅니다. 


 1년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검사를 했다면, 지금은 매일 학교와 학원에서 확진자가 나와 선별 진료소를 찾습니다. 오늘도 OO 초등학교 1학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 수십 명의 아이들의 엄마의 손을 잡고 오들오들 떨며 검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은 수십 명이지만, 설명은 똑같습니다.  

 "저희는 병원이라 검사만 할 것이고, 오늘 밤 10시에 문자로 결과가 갑니다. 등원 여부 및 격리 여부는 학교와 보건소에서 알려줄 테니, 기다리시면 됩니다. 10살 미만은 코로나에 걸려도 증상이 없거나 감기 정도이며, 심하면 독감 정도이니 걱정 안 하지 마십시오. 다만 격리되기에 불편할 뿐입니다."

 귀를 덮는 방호복에 마스크, 거기다 안면 보호기까지 쓴 채로 최대한 크게 말을 하다 보니, 머리가 웅하고 울리고 목이 쉽니다. 

https://brunch.co.kr/@sssfriend/368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코로나 검사를 받는 사람들의 불평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나이 든 아저씨든, 젊은 학생이든 면봉이 코 깊숙이 들어가면, 자기도 모르게 “악”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문제는 아이들입니다. 팔에 맞는 주사는 고개를 돌리면 되지만,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면봉은 안 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몇 번 검사를 받아본 아이들은 검사를 하기도 전에 “엄마, 나 저거 안 하면 안 돼?” 울음을 터뜨립니다. 어머니는 "이 검사 안 받으면 학교 못가.", "다하고 나면 맛있는 거 사줄게."부터, 음성을 높이며 도망가려는 아이의 팔을 붙잡은 채 등짝을 후려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 그래도 날도 추운데 마음도 추워집니다. 엄마가 붙잡고 검사를 하려고 해도  아이는 검사를 하면 죽는 것 마냥 고개를 내젓습니다. UFC를 능가하는 몸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렇게 아이와 사투를 벌이는 중에 한 아이가 왔습니다. 8살 유진이었습니다. 꽁지머리에 크게 뜬 두 눈이 귀엽습니다. 유진이도 아이인지라 검사를 하기도 전에 눈에 눈물이 핑 돕니다. 

  “으앙.”

면봉이 코 깊숙이 들어가자 유진이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곧 유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며 웁니다. 유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전에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입니다. 

 고맙습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안 아프다며, 나를 속였어."라고 엄마를 원망하다는 아이도 있고, 서럽게 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저는 울음과 아픔을 억지로 참으며 인사를 하는 유진이가 너무 예뻤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추위와 코로나에 잔뜩 움츠러들었던 저의 몸과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커다란 히터와 손난로도 녹이지 못했던 제 몸이었는데 말이죠.


 코로나에 추위까지 덮쳐 더욱 힘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추워도 겨울은 언젠가 끝이 나고 따뜻한 봄이 오듯, 코로나 또한 지나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봄은 더 빨리 찾아올 겁니다.



표지 출처: 셔터 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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