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째였다. 6살 남자아이와 부모가 같이 왔다. 작성한 문진표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확 찌푸려진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숨이 차서는 아니었다. 문진표 마지막에 있는 '집단 발생된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에 H 어린이집 확진자 나옴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망했다.'
이런 날이면 오전에만 100명은 우습게 넘는다. 오늘은 오전 내내 선별 진료소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날도 더운데 방호복을 벗을 수도 물도 마실 수 없다. 문득 권투 선수가 개체량을 통과하기 위해 체중을 뺄 때, 사우나에 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굳이 번거롭게 사우나에 갈 필요가 있을까. 나처럼 하얀 방호복을 입은 채, 검은 아스팔트 위에 서 있기만 해도 될 텐데. 지금 내 몸무게는 69kg지만, 오전 선별 진료가 끝나면 67, 잘하면 66kg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 보건소는 무료지만, 검사 결과가 늦게 나올 뿐만 아니라 미취학 아동은 아예 검사를 하지 않는다. 전화를 해 보니 아이가 검사하다가 코피 나면 감당할 자신이 없단다. 자체 검사실을 운영하는 대학 병원은 빠르면 6~7시간에서 늦어도 24시간 안에 결과가 나오지만 비용이 3만 원이 넘는다. (Y대학병원 기준 3만 6800원) 우리 병원은 오전에 검사하면 밤 12시 안에 결과가 나오고, 비용이 9000원이다. 그렇기에 어린이집이나 학원,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항상 우리 병원을 몰려왔다.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면, 대응 원칙은 이렇다. 보건소에서 즉각 역학 조사를 하고, 최대한 신속하게 일상 생활자, 수동 감시자, 능동 감시자, 격리자를 분류한 다음 반드시 검사가 필요한 사람만 병원에서 검사받으라고 지시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 명씩 코로나 환자가 나오다 보니, 이미 보건소는 한계치에 달했다. 이제는 코로나 확진자가 병원을 다녀가도 이제 현장 조사조차 나오지 않는다. "CCTV 보내세요."가 전부이다. 보건소는 일단 학교나 어린이집, 회사 등에 환자가 발생하면 전원 검사를 받게 하여 시간을 번 후, 역학 조사 이후 접촉자를 수동 감시자, 능동 감시자, 격리자로 구분한 다음 연락을 취한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아래 글 참조)
시에 확진자가 나오면, 보건소가 역학 조사를 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단체 카톡이나 SNS 등을 통해 확진자가 발생한 사실을 안다. 거기다 보건소가 문자를 보내기도 전에 우르르 병원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몰려온다. 이미 국가보다 개인의 정보력이 더 빠르고, 국가가 나서기 전에 개인이 먼저 스스로 조치를 취한다.
'어린이집 코로나 확진자'로 최초 선발대가 왔으니, 이제 본대가 올 것이다. 가장 먼저 난리가 난 곳은 병원 주차장이었다. 주차 아저씨의 손에 들린 붉은 경광등이 쉴 새 없이 좌우로 움직이고, 간간히 "차 빼세요." "거기는 차 지나가는 통로라서 주차하는 곳 아니에요." 같은 말들이 들린다.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차에서 내려 선별 진료소로 밀려들었다.
"어, 서준이다."
"어, 도윤이다, 안녕."
영문을 모른 채 어린이집 대신 병원으로 등원한 아이들은 연신 같은 반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한다. 선별 진료소 앞 야외 공터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거기다 우주복을 입은 사람까지 다가오니 신기하기만 하다.
밝은 표정의 아이와는 반대로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님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으면 어쩌나, 우리 아이가 혹여나 격리되면 어떡하지부터 아이가 격리되면 아이는 누가 돌보고 회사는 해야 할지 현실적인 고민이 멈추지 않는다. 검사를 받기도 전부터 걱정에 머리가 찌끈거린다.
이곳 선별 진료소는 아이들에게는 놀이터이자 소풍 같지만, 부모들에게는 조사받는 경찰서이자 법원이다. 판결은 오늘 밤에 내려질 것이다. 코로나 음성이면 석방될 것이고, 양성이면 증상에 따라 생활치료센터나 코로나 전담병원에 수용된다.
"서준이죠? H 어린이집 때문에 왔죠?"
아이를 가운데로 양쪽으로 부모가 서 있다. 부모는 고개를 끄떡인다.
나는 뒤에 온 다른 가족도 들으라고 일부러 최대한 크게 말한다.
"최악의 경우, 아이가 코로나에 걸려도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10세 미만 사망자는 없습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고령으로 70대 10%, 80대 20%입니다. 1) 거기다 아이는 상대적으로 무증상 감염이 많고, 또 어른에게 옮기는 가능성도 낮으니 2) 걱정하지 마십시오.
둘째, 저희는 병원이라 검사만 합니다. 보건소에서 역학 조사 이후에 격리 여부 결정하니 보건소 연락을 기다리십시오.
마지막으로 우리 확진되거나 격리되면 아이는 누가 돌보고 회사는 어떻게 하지 걱정이 많으시겠지만, 적어도 2주후면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번거롭고 불편할 뿐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집니다. 끝으로 질문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설명에 만족하고 질문이 없다.
H 어린이집 관련 접촉자가 대부분인 가운데, 10일 전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던 C 어린이집 관련 자가 격리 해제 검사를 받으러 몇몇 아이들이 왔다. C 어린이집 아이들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검사로, 음성이 나오면 내일부터 자가격리가 끝나 드디어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린이집도 가고, 친구도 만나서, 다른 가족도 만날 수 있다.
이번에 새로 발생한 H 어린이집 관련 학부모에게 설명할 때 내 목소리가 다가올 태풍을 예고하는 리포터처럼 무겁고 어둡다면, C 어린이집 관련 학부모에게는 긴 겨울을 끝내고 미세먼지 없는 화창한 봄날을 맞이하는 아나운서처럼 밝고 경쾌하다.
"아이고, 어머니, 힘드셨죠? 아이가 격리되면 부모님만 고생이죠. 하루 종일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애 보는 게 예삿일이 아닙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이의 손을 잡은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핀다.
"띠링."
오늘 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문자로 올 때까지 검사받은 아이의 아빠와 엄마는 잠들지 못한다. 밤 10시부터 코로나 검사 결과가 문자로 가고, 검사받은 이들 중 몇 명은 코로나로 확진될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라는 문자를 받은 이는 두 발 뻗고 숙면을 취하고, 코로나에 걸렸다는 문자를 받은 이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불면에 시달릴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H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2주 후면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돌아갈 일상조차도 코로나가 만연한 세상이다. 예전처럼 코로나 없이,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다니고 사람을 만나던 세상은 적어도 올해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슴속에 희망을 품고서 온 몸으로 버틸 뿐이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아침 9시부터 선별 진료를 한 지 3시간이 지나간다. 방호복 안의 몸은 열대우림처럼 습하고 무더운데, 입 안은 사막처럼 뜨겁고 건조하다.
마지막으로 2살짜리 아이가 검사를 받으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울며 소리친다.
'그래, 얘야, 이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오전에만 179명째를 끝으로 마지막 검사 처방을 내고 천막 안 컴퓨터에서 일어나려는데 눈 앞이 흐려진다.심한 탈수 때문인지, 쓰고 있는 실드 마스크에 습기가 차서 그런지, 그것도 아니면 이건 깨지 않는 긴 악몽 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고 퇴고를 위해 몇 차례 가다듬는 동안, 첫째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 다행히 딸은 격리되지는 않았지만, 온라인 수업에 들어갔다. 아내는 산후 조리원에 있고, 나는 출산휴가도 다 썼는데 첫째 딸은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린다. 병원도 집도 태풍 속이다.
'그래, 2주 후면 모든 게 일상으로 돌아가겠지.'
사람들에게 했던 말을 나에게 해 본다.
1. 출처: 5월 23일 현재 0~9세 미만 코로나 확진자는 5999명이지만, 사망자는 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