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Feb 25. 2022

마음이 남았다.

그녀가 아픈 원인

 그녀는 병원을 헤매고 있었다. 40대 후반인 김미연 씨는 170cm에 가까운 키에 볼륨이 적당히 들어간 펌 머리가 고급스러웠다. 세련된 외모만큼이나 말 끝에서 교양이 묻어났다. 다만 표정이 짙은 안개가 잔뜩 낀 것 마냥 무거웠다. 

 "가슴이 갑갑해요."

 로 시작한 그녀는 나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수개월 전부터 가슴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묵직하다고 했다. 대학병원 순환기 내과에서 심장 검사를 충분히 하고 이상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소화기 내과에서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를 받고, 호흡기 내과까지 들러 검사란 검사는 다 했으며 자기가 만난 의사들 모두 정상이라고 했는데, 정작 자신은 불편감을 호소했다.  

 

 무당이었다면, 한 맺힌 조상 탓을 하고
한방이었다면, 기가 허하다고 했겠지만 
나는 의사였다.  

 나는 김미연 씨 눈앞에서 손바닥을 폈다. 

 "가슴을 어디 부딪히거나 아픈 건 없죠? 피부에 뭐 난 것도 없고요?"

 "네."

 엄지 손가락을 접었다. 피부, 근골격계 질환은 아니었다. 

"운동하거나 힘쓸 때 심해지나요?"

"아니요."

 검지 손가락을 접었다. 이미 검사를 다 한 심장은 아니었다. 

 "먹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아니요."

 중지 손가락을 접었다. 소화기 질환일 가능성도 낮았다.  

 "숨이 차거나, 소리가 들리지는 않죠?"

 "네."

  나는 약지를 접었다. 이제 새끼손가락이 남았다. 

  


<가슴 해부학>

"가슴에는 첫째 근골격계와 피부가 있고요, 둘째로 심장, 셋째로 소화기인 위식도, 넷째로 호흡기인 폐가 있어요. 이미 대학병원에서 검사란 검사는 다 하셨고, 제가 물어봤을 때에도 딱히 관련성은 없어 보여요."


 나는 남은 새끼손가락을 쳐다보았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마음이에요.

 "최근 힘든 일 있지는 않았나요?"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깔았다. 하얀 진료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6개월 전에 부서 이동을 하고 나서부터 그런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거든요. 선생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아무도 선생님처럼 말씀해 주시지 않은 거죠?"

 "처음부터 마음이 문제였다고 말하순 없죠. 이미 검사를 다 하셨기에 다른 질환을 확실히 배제할 수 있었던 거죠."

 고학력자나 군인의 경우 정신의 문제라는 것을 자신이 나약하다고 간주하기에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녀 또한 고학력에 상당한 캐리어를 쌓은 것으로 보였기에  내가 처음부터 <마음>이 문제라고 했으면 그녀는 인정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거기다 인생이 타이밍이듯, 그녀도 나도 운이 좋았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본 의사였다면, 나 또한 이런 저런 검사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의사선생님들이 다른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모두 확인해 주었기에 나 또한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고, 그녀 또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 절반이 좋아집니다.

 이제 병원을 헤매던 그녀는 더 이상 병원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새끼손가락을 접었다. 




 

<깨알같은 책 광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1294110


 

 






 


매거진의 이전글 "난 몰라요, 이 환자 못 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