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OO 의료원에서 응급실 당직을 서던 나에게 병동 간호사가 전화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의사면허를 딴지 2년 차로, 공중보건의 2년 차로, OO 의료원 야간 진료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OO 의료원은 29개의 병실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는 야간 진료실만 담당하기로만 했었기에 병동에서 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의사로서 12년 전 나를 평가하자면, 풋내기 중에 풋내기였다. 환자의 벌어진 피부를 손을 떨면서 겨우 짜 맞출 정도였고, 중환자는 커녕 입원환자를 본 적이 전혀 없었다. 1년 간 보건지소에서 근무했지만, 고혈압, 당뇨, 두드러기, 감기, 방광염, 설사 정도가 임상 경험의 전부였다. 그리고 2년 차 때, 뜬금없이 의료원 야간 진료실을 맞게 되었다.
접수하는 행정 직원 한 명에 계약직 간호사 한 명, 당직 의사 한 명이 전부이니 OO 의료원 야간 진료실에서 제대로 된 진료가 될 리 없었다. 밤에는 X-ray도 안되고, 피검사도 안 되니, 그냥 동네 의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던 OO 군에는 밤에 진료하는 곳이 의료원뿐이라 일단 119는 모든 환자를 의료원으로 데려왔다. 24시간 진료 가능한 병원이 군에 있어야 지역구 정치인으로서 체면이 서니까.
환자는 밤새 10명 전후로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물에 빠진 환자, 뱀에게 물린 환자, 낫에 베인 환자, 교통사고 환자 등 중한 환자가 왔다. 응급실에는 일반외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 성형외과 의사, 나와 같이 의사 면허증을 딴 풋내기 의사 3명, 총 6명이 번갈아가면서 24시간 야간 진료실을 맡았다. 모두 공보의였다.
공중보건의를 관리하는 보건 과장은 나를 포함한 의대를 졸업하고 온 풋내기 의사 3명에게
"응급실 알바라도 뛰면서, 환자 보는 법 좀 배워와요."
라고 자기보다 어린 우리에게 여러 번 당부를 했다. (공중보건의의 타 병원 근무 알바는 명백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 과장은 임상 경험 없이 졸업장만 따고 공중보건의로 온 의사 실력을 알기에 그렇게라도 당부한 것이다. 혹여나 우리가 진료를 잘못하여 민원이나 소송이 제기되면 의료원 입장에서도 좋은 게 없었다.)
일반외과 선생님이 계셨다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었으나 하필이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당직을 설 때 병동 입원 환자 혈압이 떨어진 것이었다. 운이 없었다.
'혈압이 떨어졌다고? 왜?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차트를 열었다. 원장이 마음대로 휘갈겨 쓴 차트로는 환자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병실로 가서 할머니를 보긴 봤으나, 할머니는 약간 의식이 쳐져 말도 제대로 못 했고 나는 무엇을 봐야 할지도 몰랐다. 무서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간호사가 유일한 의사인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뭔가를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난 몰라요. 이 환자, 못 봐요.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수습을 해야 했다. '전원. 그래, 전원 시키자.그러면 되겠네.' 나는 근처 OO시에 있는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며칠 전, 군산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공중보건의 33살 성형외과 전문의 이 OO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알았다.
2020년 5월부터 군산 의료원 응급실에서 일을 하던 성형외과 전문의 이 OO 씨가 1월 26일 관사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의사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나 또한 의료원 야간 진료실에서 일을 한 적이 있기에 이 OO 씨의 죽음이 안타까웠다. 사망한 이 OO 씨는 응급실 근무뿐만 아니라, 올해 1월에는 김제에 있는 코로나 생활 치료센터에서 근무까지 했다. 아버지 이 O 씨는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김제 생활치료센터 파견을 갔다 온 다음에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상했다.
<군산 의료원. 출처: 군산의료원 홈페이지>
전라북도 군산의료원은 지하 1층, 지상 8층 413 병상으로 매우 큰 병원이다. 무려 내과와 외과를 포함해서 23개의 진료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응급의료센터 등 6개 센터, 호스피스 완화병동까지 있다.
400 병상 병원이라면, 내가 일했던 시골의 야간 진료실과는 다르게 어머어마한 중환자들이 몰려온다. 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같은 초응급 환자들이 하루에도 몇 명이 온다. 경험이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응급실을 꼭 응급의학과 전문의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 규모의 병원이라면, 그것도 어떻게든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사립병원이 아니라, 공공 병원이라면 최소한 바이탈을 다루는 과 전문의에게 응급실을 맡겨야 한다. 응급의학과가 최선이지만, 그것이 안되면 일반외과, 흉부외과, 또는 오랜 응급실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맡겨야 한다. 성형외과 의사는 환자를 보는 모든 과 중에서 응급실과 가장 거리가 멀다. 흉터 없이 상처를 봉합하는 건, 전혀 응급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산의료원은 바이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응급실과 가장 거리가 먼 성형외과 전문의를 응급실 과장으로 썼다.
거기다 1월에는 뜬금없이 코로나 생활 치료 센터에 파견까지 보냈다. 코로나와 전혀 상관없는 성형외과 의사,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공중 보건의가 간 것이다. (군 복무 대신 3년간 근무하는 공중보건의 입장에서는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축구로 말하면 수비수를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운 꼴이다.
성형외과 전문의 이 OO 씨는 400 병상 군산 의료원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응급실을 맡으면서 몰려오는 중환자에 힘들지는 않았을까? 나처럼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를 보면서 무서워 떨지는 않았을까? 나로 인해 환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지나 않았을까?
돌아가신 선생님이 힘 없는 공보의를 갈아넣어 준 학대 속에서 죽은 비참한 피해자가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었기를 빈다.
12년 전, "난 몰라요. 난 이환자 못 봐요."라고 근처 큰 병원 응급실로 보냈던 80대 할머니는 심한 설사에 의한 저혈량 쇼크로, 타 병원 응급실에서 수액만 충분히 맞은 후 다음 달 다시 의료원으로 돌아왔다. 부끄럽고 한심한 공공의료의 민낯이자, 들추고 싶지 않은 내 아픈 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