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두 번째 이야기
1952년생으로 한국의 이낙연과 같은 나이인 푸틴은 1975년 23살부터 KGB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미혼은 아무래도 승진에 걸림돌이 되었기에 그는 1983년 32살에 승무원인 류드빌라와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은 그가 현재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였다. 가장 먼저 키예프로 간 후,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신혼여행을 즐겼다. 물론 그는 상남자답게 아내가 불평하면 ‘여자를 칭찬하는 것은 여자를 망치는 것이다.’라는 러시아 속담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결혼기념일을 챙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2년 후인 1985년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34살에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는 것이었다. 소련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는 동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첩보전이 펼쳐졌던 곳은 수도인 베를린이었기에 지방 도시인 드레스덴으로 발령받은 푸틴에게 사실상 승진 가능성은 없었다.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조국인 소련이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1990년 초에는 아예 3개월간 월급도 나오지 않았다. 조국은 냉전이라는 전쟁에서 패했고, 첩보요원들은 낙오되었고 실업자가 되었다. 평생을 나라를 구하는 첩보 요원을 꿈꾸며 살아온 푸틴에게 충격과 패배감은 남달랐다.
1991년 한창 일할 나이인 40살의 푸틴은 KGB에 근무한 지 16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 법대 교수이자, 민주인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인 정치에 발을 내딛던 소브차크 밑에서 일하게 된다. 소브차크는 승승장구하여 러시아에서 옐친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고, 소브차크 밑에서 성실하게 일하던 푸틴 또한 소브차크 시장의 오른팔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민주 인사로 옐친의 뒤를 이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옐친의 견제를 받은 소브차크는 1996년 재선에 실패했다. 소브차크의 이인자였던 그는 또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재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실업자가 된 그가 1996년 8월 15일 별장인 다차에서 쉬고 있을 때, 별장에서 화재까지 났다. 그런데 그 별장에는 자신의 전 재산인 5000달러(500만 원)가 있었다. 푸틴은 그 돈을 건지기 위해 얇은 담요를 덮고서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모스크바와 함께 소련 1, 2위를 다투는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의 이인자였던 그가 모아둔 돈이 겨우 5000달러였고, 그 작은 돈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다는 사실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준다. 적어도 그때까지 그는 러시아의 다른 이들과 달리 청렴했다. 그의 삶은 화재로 무너져 버린 별장처럼 곧 무너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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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뉴 차르 블라디미르 평전 스티븐 리 마이어스 지음/이기동 옮김/ 프리뷰 출판사
표지 사진: 그의 아내 류드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