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심 하나로 대통령이 된 인물

-푸틴 세번째 이야기-

by 빛나리의사

실직에 이은 화재로 그의 삶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KGB로서의 경력이 끝장난 것에 이은 두 번째 위기였다. 그 때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의 상사였던 소브체크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옐친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1996년 옐친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미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그 틈을 타 측근들이 자신의 세력을 늘리기 위해 조직을 키웠기에 푸틴 또한 거기에 속할 수 있었다. 푸틴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에서 그는 아웃사이더에다 순진한 시골뜨기였다. 139page

모스크바에서도 그는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욕심 없이 성실하게 일하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이에 이전 경력을 살려 KGB를 이어 받은 FSB(연방보안국)에 몸담게 되었다. 상크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할 때처럼 그는 모스크바에서도 성실함을 인정받아 빠른 속도로 승진했다. 거기다 청렴하기까지 했다.


“푸틴은 내가 제의한 뇌물을 거절한 유일한 관리였다. 나는 그 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160page

소브차크의 오른팔 2.jpg <좌: 소브차크, 우: 푸틴>

성실하게 일하던 푸틴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를 일이 생겼다. 그가 5년간 모셨던 전 상크페테르부르크 시장이자 재선에 실패한 소브차크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인 옐친으로서는 민주화 동지였지만, 인기가 치솟으며 자신의 자리까지 넘보았던 소브차크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푸틴은 5년간 소브차크 시장의 오른팔로 일했기에 누구보다도 소브차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푸틴의 입에 소브차크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거기다 푸틴으로서는 소브차크를 제거하려는 현 대통령 옐친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입을 열어 자신의 상관이었던 소브차크의 비리를 폭로하는 대신, 자신이 몸 담고 있는 FSB의 권한으로 전세기를 구해 소브차크를 해외로 도피시켰다. 푸틴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걸며 5년간 모셨던 상관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푸틴이 소브차크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말을 듣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큰 위험을 스스로 무릅쓰고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한 행동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 152page


그렇게 말한 이는 다름 아닌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던 혼란스러운 러시아의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것도 전직 상관에게 충성을 다하는 푸틴에게 옐친 대통령이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옐친은 푸틴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옐친은 푸틴을 KGB를 이어받은 FSB국장에 이어, 총리까지 임명한다. 아예 정치 경력이 없는 무명의 푸틴인 것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대우였다.


푸틴 옐친.jpg

하지만 옐친의 후임자가 되는 것은 "죽음의 키스"였다. 당시 러시아는 국가 부도 사태인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경제가 폭망인데다, 체첸과의 전투에서도 나쁜 소식만 들려 왔기에 지지율은 3% 남짓이었다.

체첸을 푸틴.jpeg <체첸 전쟁 지역으로 달려간 푸틴>

총리가 된 그는 체첸과의 전쟁 현장으로 달려갔다. 열정에 넘치는 젊은 총리와 늙고 병약한 대통령이 대비되었다. 체첸과의 2차 전쟁은 패배한 1차전과는 달리 승리했다.

총리로 임명된 8월에 차기 대통령 후보로 한 자리수였던 지지율이 10월에는 27퍼센트, 11월에는 40퍼센트가 넘었다.

옐친은 자신의 뒤를 지켜줄 사람으로 푸틴을 믿고,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 푸틴은 사임한 옐친에 이어 대통령 대행에 오른다. 의리남이었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 전직 대통령인 옐친에게 다양한 특혜와 함께 각종 면책권을 주면서 믿음에 보답했다.


2000년 3월 26일 대선 투표에서 53%의 지지율로 손쉽게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KGB 후속인 FSB 국장을 하면서 알게 된 고위 인사들과 기업들의 금융 정보를 손에 쥐고 있었다.

푸틴은 개혁에 나섰다. 소련 붕괴 이후, 각종 공기업을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며 헐값으로 인수해 부를 축적한 올리가르히 세력을 처단했다. 국민들이 환호했다. 그는 민영화시켰던 기업들을 다시 국가소유로 돌렸다.

다음 총선에서 450의석 가운데 300석이 넘는 다수 의석 차지했다. 거기다 바닥을 치던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함으로 러시아는 다시 부유해졌다. 그의 권력 기반은 튼튼했고, 얼어붙었던 러시아 경제는 웅크린 몸을 활짝 펼치기 시작했다.



crude-oil-prices.png <2002년부터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원유가격>


강한 푸틴, 강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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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푸틴이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졌다. 한 때 미국과 전세계를 두고 경쟁을 하던 강한 소련에 대한 향수와 미련은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16살부터 나라를 구하는 첩보요원을 꿈꿔왔던 그에게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는 러시아 대통령으로서 찾아온 절호의 기회를 나라를 아니라, 자신을 위해 쓰기 시작했다.



전편. 푸틴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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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및 요약: 뉴 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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