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나리의사 Sep 07. 2022

마음 수술

한 여고생 이야기

 '고등학생 맞나?'

 그녀가 나에게 중고등학생 건강검진 종이를 내밀었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그녀는 만 20살 여자 성인 평균 키인 162cm보다 훌쩍 커서 170에 가까웠고, 허벅지에 착 달라붙는 치마는 속옷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V자로 심하게 팬 티셔츠는 내 시선을 더욱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선명한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은 잘 다듬어진 긴 속눈썹 속에서 약간 촉촉히 젖어 있었다. 선명한 이목구비에 젊음이 더 해진 하얀 피부는 눈이 부셨다. 다만, 도를 넘은 화장이 오히려 해를 가리는 구름처럼 아름다움을 가렸다.


 "OO 고등학교네요. 몇 달 전에 건강검진 했을 텐데, 그날 결석 하셨나봐요."

 "아, 네. 그날 결석했어요."


 가끔 병원에서 학교 출장 검진을 나가는데, 개인적으로는 매우 싫어한다. 오전 2~3시간 만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이상한지 감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거기다 체육관이나 교실에서 칸막이를 치기는 하지만, 열린 공간이라 학생과 대화하면 뒤에 줄 서 있는 친구에게 다 들려 제대로 된 면담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번거롭겠지만, 이렇게 진료실로 찾아오는 경우를 더 선호한다.  


 "키는 168cm로, 이미 성인 평균 키인 162cm보다 더 크고요, 몸무게는 정상입니다. 자, 저기 서서 이렇게 앞으로 숙여보세요."

 원래는 정면에서 봐야 하지만, 학생이 심하게 파인 옷을 입었기에 나 또한 일어서서 옆에서 관찰했다.

 정상.

 "평소 앓고 있는 질환이나, 먹고 있는 약, 수술받은 적 있어요?"


 "네, 쌍꺼풀 수술했어요."


 '아, 그랬구나.'

 "평소 어디가 아프거나, 몸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어요?"

 "아뇨, 없어요."

 여학생은 귀찮은 듯이 높고 빠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학생들에게 항상 "평소 어디가 아프거나, 몸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어요?"를 묻는데, 100명 중 99명은 없다고 한다. 역시나. 이제 마지막이다.

 "이렇게 저를 따라 해 보세요."

 나만의 방법인데, 두 손바닥을 활짝 펴서, 앞으로 내민 후, 앞뒤로 돌리게 한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건강검진을 하다 보면 손톱을 물어뜯는 학생이 많아서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방법이었다.

 예원이 학생은 손톱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잘 다듬어진 긴 손톱은 뭘 발라 핑크빛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문제는 손톱이 아니라, 손목이었다. 그녀의 하얀색 왼쪽 손목에는 더 하얀 줄이 나 있었다. 그것도 여러 줄이.

<출처: 셔터 스톡>

 '아..........................'

  몇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OO 고등학교에 검진을 갔을 때, 100명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중에 2명이 저 흔적이 있었다.


 자해였다.


 자해하는 청소년 세 명 중 한 명은 자살 의도가 있다. 불안과 우울증도 흔하다. 나는 예원이 학생에게 정신과 진료를 조심스럽게 권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지만, 내 권유를 따라 정신과에서 치료받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쌍꺼풀 수술 대신, 마음 수술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그녀의 아픔과 슬픔을 단번에 제거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 참 교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