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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an 17. 2023

"환자분이 제 어머니라면..."

서로에게 행복한 결말

 "부디, 선생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봐주세요."

 환자의 딸인 보호자가 손 아래 동생 뻘인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을 했다. 80대 김영숙 할머니는 폐렴이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이는 엑스레이에서 공기가 차서 검게 보여야 할 폐가 염증으로 하얗게 보였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침이나 음식물이 가야 할 식도가 아니라, 가지 말아야 할 기도로 들어가 생기는 흡인성 폐렴으로 와상 환자에게서 흔히 생기는 질환이었다. 폐도 폐였지만, 오랜 와상 생활로 비쩍 마른 할머니의 몸이 내 이마에 주름을 더 깊게 만들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처음 보는 의사에게 어머니의 몸을 맡겼으니, 걱정도 되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처럼 생각해 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의사인 내가 김영숙 할머니를 내 어머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흡인성 폐렴의 치료제인 항생제가 바뀌지 않는다. 나는 전 세계 의사들이 수십 년 간의 경험과 연구 끝에 흡인성 폐렴에 가장 효과가 좋다고 정해 놓은 항생제를 쓴다. 특별한 치료가 없으니 좀 더 친절하고자, 김영숙 할머니만 특별히 회진을 한 번 더 돌거나 하면 병원의 하얀 벽에 있는 보이지 않는 눈과 귀가 이를 금세 알아차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에 소문이 퍼지고, 다른 환자나 보호자가 같은 환자인데 사람을 차별한다는 불만을 제기할지도 몰랐다. 

 보호자인 따님의 입장에서 나는 어머니의 유일한 주치의지만, 의사인 나에게는 김영숙 할머니는 20명의 환자 중에 한 명이었다.   

 거기다 의사들 사이에 <VIP 신드롬>이 있다. 환자가 의사나 병원에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서 의료진이 특별히 잘 봐주려고 할수록, 기대와 달리 예후가 좋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을 해서 그럴 수도 있고, 반대로 아프고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검사나 시술, 또는 수술을 환자가 겪을 고통에 너무 마음이 쏠려하지 않았을 때, 그것도 아니면 수술 후 후유증 등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무리한 시술이나 수술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어느 쪽이든, 환자와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냉정한 판단력을 잃어서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의사가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된다.


  나는 10년 넘게 의사로 살면서, 수십 명의 환자를 잃었다. 만약 돌아가신 그분들이 제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버지, 어머니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식이 죽거나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만약 내가 환자를 모두 가족처럼 여겼다면, 아픔과 슬픔에 맨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환자를 내 가족처럼 여기지 않았기에 의사로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었고, 또한 사람으로서 멀쩡할 수 있었다. 끝으로 내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가 하나 남아 더 있었다. 


 그런데 큰 누이 뻘인 보호자가 의사인 나에게 김영숙 할머니를 내 어머니처럼 여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네, 네. 그럼요. 제 환자이니 제 가족이나 다름없죠." 하면서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가볍게 넘기면 되는데, 소심해서 그러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매번 불편했고, 마지못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게 김영숙 할머니가 입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새벽이었다. 병동에서 심폐 소생술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코드 블루가 뜨자, 멈춘 환자의 심장과는 반대로 의사인 내 심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급히 병동으로 달려갔다. 아니길 바랐지만, 김영숙 할머니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뼈만 남은 가슴을 내 두 손을 모아 힘차게 누르자, "우지직"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갈비뼈가 단 번에 무너져 내렸다. 10분이 넘게 걸린 심폐 소생술 끝에 할머니의 심장은 미약하게 다시 뛰었다. 


 "선생님, 우리 어머니 살아계신 거죠? 돌아가신 거 아니죠?"

 내가 할머니의 가슴에서 손을 떼기가 무섭게 옆에서 울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내 가운을 붙잡고 물었다.  

 

 "간신히 돌아오긴 했지만, 고령이신 데다, 원래 몸 상태도 안 좋고, 심장이 멈춘 시간도 길고 해서, 조만간 다시 심장이 멈출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는 심폐소생술로 거칠어진 숨을 최대한 낮춰가며 할머니의 현재 상태를 전했다. 내 말에 아주머니의 얼굴에 잠시 비친 기쁨은 다시 절망으로 변했다. 할머니의 가냘픈 몸에 선으로 연결된 각종 기계가 붉은빛을 반짝이며 요란한 경보음을 울리는 가운데, 환자와 의사는 침묵하고, 보호자인 아주머니만이 흐느꼈다.

 할머니는 의식이 없고, 보호자는 울고 있는 가운데, 나는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다시 심장이 멎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심폐 소생술을 계속할까요?"


 운다고 고개를 숙여 검은 머리카락에 하얀 새치가 보이던 아주머니는 겨우 고개를 들어 눈물로 붉어진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표정에는 슬픔과 당혹감, 그리고 난처함이 가득했다. 내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긴다는 말을 해야 하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기를 피하고 싶었지만, 의사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보호자가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이보다 더 효과적인 말은 없었다. 


   만약 환자분이 제 어머니라면, 편안하게 보내드릴 겁니다.

 아주머니는 다시 어머니에게 고개를 묻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자리를 비켜서 심폐 소생술 당시 기록을 작성하고, 당시 말로 내린 각종 오더를 글로 바꿔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보호자와 상담한 나는 차트에 '환자분 10분 넘는 심폐 소생술 후, 심박동이 돌아왔으나, 전반적인 상태를 고려했을 때, 예후가 매우 나쁘며, 다시 심정지가 올 가능성에 대해 보호자에 설명했으며, 이에 보호자에게 더 이상 심폐소생술 하지 않기로 함.'이라고 적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영숙 할머니는 예상했던 데로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조용히 돌아가셨다. 


 오늘도 환자를 보면서, 나는 내가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는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란다. 그것이 서로에게 행복한 결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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