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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an 26. 2023

"입원하러 왔습니다."

그가 응급실을 찾아온 이유  

 오래전,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응급실의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과 함께 겨울이 밀려 들어왔다. 미숙한 의사인 나는 환자가 무서웠고, 내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은 겨울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환자도 추위도 싫었기에 응급실 문일 좌우로 벌어질 때마다 추위와 긴장감에 몸과 마음 모두 떨어야 했다.

 

응급실의 불투명한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에 찌든 땀 냄새와 술 냄새가 같이 실려 왔다. 인상을 구긴 50대 아저씨가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등에는 큰 검은 봉투를 짊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그리 무겁지는 않은 듯, 검은 봉투가 자신보다 더 컸지만,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냄새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그 아저씨 얼굴 때문인지 나 또한 얼굴을 찌푸렸다.

 배가 아파요.

 그는 배가 아프다고 했으나 그리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문제는 배가 아니라 술이었다.  50킬로 남짓한 체중에 추위만큼 짙게 배긴 술냄새가 그가 최근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알코올 중독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 밥조차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술만 마신다. 당연히 영양부족으로 살이 빠진다. 술만 마시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이미 그는 몸도 마음도, 생활까지 무너져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진찰과 혈액 검사 모두 나쁘지 않았다. 위내시경을 고려할 수 있으나 급하지도 않았다. 그에게는 장기간의 재활과 함께 정신과 입원 치료가 필요할 것이었다.

 "입원시켜 주세요."

 "속 쓰린 것은 추후 위내시경이 필요할 수 있으나, 응급으로 할 상황은 안 됩니다. 검사상에서 특이 소견이 없어, 내일 아침에 오셔서 내시경 받아보십시오."

 "입원하러 왔습니다."

 "입원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고, 입원하시겠다면 일반 병원보다 정신병원에서 알코올 중독과 관련해서 입원 치료를 하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하지만 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입원시켜 달라고 했다. 의사인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병원에서도 내외과적으로 해줄 것이 없었고, 괜히 입원시켰다가는 술로 인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도 높았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그는 자신의 뜻을 접었다.

 수액이 다 들어가서 링거를 뽑자, 그는 들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등에 매고는 몇 시간 전 자신이 들어왔던 응급실 문을 열었다. 그 틈을 타 추위와 어둠이 그가 내뱉은 말과 함께 훅 하고 들어왔다.


 날도 추운데, 집에 기름은 없고......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척하며, 괜히 하얀 가운의 옷깃을 어루만지며 그가 남기고 간 추위를 쫓으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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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의료보호 1종인 경우는 진료비가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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