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서 힘들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아버지의 비상금”이라는 사연이 화제가 되었다.
A 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건강 검진을 갔다. A 씨의 아버지가 수면 내시경을 받을 차례였고, 담당 의사는 A 씨의 어머니께 장난을 쳤다.
“사모님! 남편 분이 비상금 모아 놨는지 알아봐 드릴까요? 내시경 할 때는 모두 사실만 말하거든요.”
라고 하자, 어머니가 “딱히 궁금하진 않는데, 알아봐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비상금 어디에 모아 두셨어요?”라는 의사의 말에, 마취 상태인 아버지가 “아, 그거, 내가 잘 모아뒀어.”라고 두서없이 대답했다. 이어 의사가 “근데 그 돈 왜 모으세요?”라고 묻자, 아버지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거, 우리 여보 나 때문에 고생 너무 많이 해서, 맛있는 거 사주려고……. 나 (돈) 하나도 안 쓰고 3년 동안 모았어. 맛있는 거 사줘야 해…….”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는 남편의 사랑을 접한 많은 이들은 감동을 받았겠지만, 의사인 나는 섬뜩했다.
사람들은 수면 내시경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의식하 진정 내시경이다. 병원과 의사마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위내시경을 할 때는 주로 미다졸람을 쓴다. 미다졸람이라는 약은 사람을 완전히 재우지 않는다. 미다졸람을 주사하면, 사람은 해롱해롱 한 상태지만 묻는 말에 대답도 하고, 몸도 움직인다. 다만 깨서, 그 당시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의사가 자기 병원 놔두고 다른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 것도 이상해서, 우리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나이가 들었는지, 올해 건강검진에 위 내시경이 처음으로 포함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짖꿎은 내시경 담당 선생님이 장난을 친다고 유부남인 나에게 “선생님, 병원에서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라고 물으면 어떡하지? 내가
3병동의 박소진 간호사가 정말 예뻐요. 제 이상형이에요.
라고 무의식 중에 대답이라도 했다가는 나는 말한 기억도 없는데 그날 병원 전체에 소문이 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뒤에서 "양 선생님이 3 병동 박 간호사 짝 사랑한데. 아이가 둘이나 있는 유부남이 어떻게?"
"그러게, 나이 차이가 10살 넘게 나는 처녀를 어떻게 좋아할 수가 있어. 아이 망측해라."
라며 수근덕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식당 밥이 왜 이렇게 맛이 없냐?" 따위의 병원 욕을 늘어놓았다가는 뒷감당이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위내시경을 생으로 받았다. 뱀과 같은 내시경이 내 배를 가로지를 때, 구역질과 함께 눈물과 침을 흘리면서 ‘음, 식도하부 괄약부를 통과하는 군. 좁은 곳을 내시경이 비집고 들어가니 아프군’,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좁은 입구인 유문 괄약부를 지나갈 때는 마치 커다란 뱀이 배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군.’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사실 우리나라 의료 상황에서 의사가 저렇게 여유 있게 환자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할 여유가 없다. 내가 위내시경을 생으로 받은 이유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 공가를 주는 공무원과는 다르게 내시경을 받자마자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눈물과 콧물, 끝으로 질질 흐르는 침을 닦고 나는 진료실로 달려갔다. 1분 만에 내시경을 받던 환자에서, 의사로 돌아가야 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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