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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Dec 14. 2022

소아과의 결정적 순간  

소아과는 2년 전에 죽었다. 

 소아과 문제가 한참 이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213/116968006/1

https://www.sedaily.com/NewsView/26EWCGZE2Y

  내가 수련을 받았던 강남 세브란스 병원도 밤에는 소아 응급실 진료를 하지 않는다. 두 살된 둘째가 밤에 아파서 응급실에 전화를 했더니, 무려 2군데 병원에서 "15세 미만은 진료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정확하게 2년 전, <소아과의 죽음, 그리고 10년 후>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다음 메인에도 올랐고, 내 책 <너의 아픔, 나의 슬픔>에서도 나온다. 안타깝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미리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딱 2년 전 2020년 12월에 실시한 2021년 소아과 모집에서 심각한 미달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결정적이었다. 


 2년 전에 나는 왜 소아과가 죽었다고 했을까?  




 소아과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의사도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저수가에 소아과는 성인처럼 영양제 같은 비급여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에게 검사를 많이 할 수도 없다. 오로지 많은 환자를 보는 것으로 버텼는데 출산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즉, 잠재 고객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출산율 감소로 소아는 줄지만, 산모가 고령화되면서 오히려 고위험 분만은 는다. 40주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미숙아가 증가한다. 하지만 <이대 목동 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결과가 나쁘면 열악한 신생아 중환자실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의료진에게만 책임을 지운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위험한 과를 기피한다.


 그뿐 아니다. 신생아 중환자실은 1년에 병상 하나당 1억에 가까운 적자가 난다. 병원은 어쩔 수 없이 구조조정을 통해 병상 수를 줄인다. 신생아 사망 사건으로 신생아 중환자실이 텅 비어버린 이대 목동 병원은 오히려 적자가 줄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들린다. 구속될 위험마저 무릅쓰고 아이를 살리려는 의사조차 이제

일할 곳이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로 아이들이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 소아 환자가 절반, 아니 반의반으로 줄었다. 폐업하는 소아과와 소아 병원이 부쩍 많아졌다. 소아과를 하면 먹고살 길이 없다는 것을 가장 풋내기 의사인, 군대로 따지자면 신병 훈련소에 있는 인턴들이 먼저 알아차리고 소아과에 지원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아과 레지던트는 4년간 수련을 받는다. 1년 차는 이등병, 2년 차는 일병, 3년 차는 상병, 4년 차는 병장이다. 1년 차가 지원율 32%로 미달이라는 말은 원래 3명인 이등병이 나뿐이라는 뜻이다. 3명이서 하던 일을 동기가 없어 혼자 해야 하니, 죽을 맛이다.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질병과 힘을 합쳐 싸워도 힘든데, 힘을 합쳐 나갈 동기가 없다. 군대라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지만, 레지던트는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 1년 차 입장에서는 재수해서 더 좋은 과, 더 좋은 병원에 갈 수 있는데 굳이 힘들고 미래도 없는 소아과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 거기다 어떻게 1년을 버텨 내년에 2년 차가 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자기 밑에 들어올 1년 차가 없다.


 ‘야, 거기 작년에 미달이었다더라.’는 소문이 퍼지면, 아무도 그곳에 지원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남은 4년을 버틸 자신이 없다. 어떻게 버텨서 전문의를 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미달을 각오하고, 온갖 어려움을 예상하고 들어온 소아과 1년 차 중에서도 포기하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한 연차가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도미노다. 내년에도 미달, 내후년에도 미달이다. 일단 미달이 나기 시작한 소아과는 특단의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최소 5년 이상, 어쩌면 영원히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앞으로 몇 년간 소아과 의사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동네에 소아과 의원이 없어 아픈 아이가 갈 곳이 없어 쩔쩔매게 될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더 심각한 상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임신 27주인 진아 씨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잠에서 깼다. 하의가 축축이 젖었다. 양수가 예정보다 무려 3개월이나 빨리 터진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휴대전화로 119를 불렀다. 5분 안에 도착한 119 대원이 원래 진아 씨가 다니던 병원으로 간다. 병원에서는 응급 분만이 필요하지만, 27주 된 미숙아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대학병원으로 가야 된다며 아예 받아주지 않는다. 119 대원은 다시 진아 씨를 다시 앰뷸런스에 태우며 A대학병원으로 전화를 한다. 산모가 27주라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들은 A 대학 병원에서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현재 모두 차 있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다. 초조한 119 대원은 식은땀을 흘리며 B 병원으로 전화를 하지만, B 병원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는 똑같은 이유로 받을 수 없다고 할 뿐이다. 주위의 C 병원도, D병원도 마찬가지다. 


 갈 곳을 잃은 앰뷸런스는 도로 위를 헤매는 가운데 산모 뱃속에 있는 태아의 심박수는 점점 떨어지고, 진아 씨의 의식도 가물가물해진다.




출처: 양성관, <의사의 생각> 52~55p, 행복우물 출판사(2021)


  기대했던 특단의 조치는 없었다. 소아과 의사가 죽었으니, 다음은 누구 차례일지 걱정만 앞선다. 차라리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래도 죽은 소아과에 들어가겠다고 뜻있는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가 2023년 아산과 서울대학교 병원 지원이다. 2021년 그나마 소아과 전공의를 많이 모집한 서울대학교와 아산병원이기에, 2022년에도 2023년에도 어느 정도 전공의를 채울 수 있었다. 

 아이를 살리러, 죽은 소아과에 들어가서 부디 자신이 죽는 꼴은 당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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