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에세이 4월호
아래글은 월간 에세이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런 기회를 주신 월간 에세이 김신영 편집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병원에는 아픈 사람만 온다. 몸이 아프던가, 마음이 아프던가, 그것도 아니면 둘 다 아프다. 세상에는 아직도 치료할 수 없는 수많은 질병이 있지만, 의사로서 제일 힘든 건 불치병이 아니다.
의사를 가장 괴롭히는 건 병이 아니라 사람이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편의점과 식당 등에서 마주한 수많은 진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돈다. 하지만 경찰서와 병원만 할까 싶다. 13세기에 살았던 단테는 그의 유명한 저서 신곡에서 지옥을 9층으로 묘사했는데, 그가 21세기의 병원과 경찰서를 보았다면 지옥에 병원과 경찰서를 더해 11층으로 다시 썼을 것이다.
"당장 의사 나오라고 해."
라고 대학병원 응급실을 떠나가도록 소리치는 건 의식을 잃은 중증 환자가 아니라, 멀쩡하게 걸어서 들어온 중년의 50대 아저씨였다. 새벽에 두 손으로 왼쪽 볼을 붙잡고 병원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온 짤막한 키의 아저씨는 어떡해서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질렀다. 안내 직원이 접수 여부를 묻자, 자신이 아파 죽겠는데 무슨 형식을 따지냐고 목소리를 더 높였다. 아저씨를 괴롭힌 건 충치로 인한 단순 치통이었다.
Everybody lies.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병원에 오는 사람은 조금 더 많이 한다. 비가 오는 월요일이면, 학생들이 온다. 늦잠을 자다 지각하여 학교 대신 병원으로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며 어설프게 아픈 척을 하며 진료 확인서를 받으러 온 것이다. 아픈 척 연기를 하는 학생은 그래도 낫다. 아예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진료 의뢰서를 받으러 왔어요.”라는 학생도 있다.
어른은 더 심각하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걸리지도 않은 병에 걸렸다고 진단서를 써달라고 생떼를 쓴다. 아예 진단서에 병명은 물론이고, 자신이 원하는 치료 기간까지 요구한다. 안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심각한 질환이 수두룩한데, 꾀병마저 추가되니 의사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일을 몇 번 겪다 보면 가끔은 '저 환자가 진짜 아픈 건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건가?' 생각하게 되고, 진료실에 들어온 사람이 몸이 아픈 환자로 안 보이고, 나를 속이려는 사기꾼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생각 끝에 어제 하루 동안 내 진료실을 다녀간 환자를 곰곰이 떠올려 본다. 수십 명의 환자 중에 기억에 남는 이는 대개 상태가 안 좋았던 한두 명의 환자이다. 다수의 환자는 지극히 평범하여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도 잘 기억 나질 않는다. 이상하다. 어제 차트를 보면 나는 분명 수십 명의 환자를 보았는데 말이다.
나, 더 정확히는 나의 기억은 치사했다.
나는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환자를 떠올리기보다 소수의 특별한 환자만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의사는 힘들다, 진상을 많이 겪는다며 직업적인 어려움을 과장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람을 대하는 모든 직종은 하루에도 수십 명 일 년에 수만 명의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는 별의별 사람이 있다. 환자건, 손님이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극히 예외만을 떠올리며, 그런 일을 일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다수에 해당하는 일상의 보통 환자를 잊고 있었다. 매달 날짜를 지켜서 내원하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김OO씨, 대기 시간은 길고 상담 시간은 짧지만 불평 없이 대기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평범한 사람들을 말이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내가 심근경색으로 진단 내리고 대학병원으로 의뢰를 드렸던 60대 아저씨 한 분이 어제 다시 우리 병원을 찾아오셨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전형적인 심근 경색 환자였기에 내가 아닌 다른 의사라도 같은 진단을 내리고 같은 대처를 했을 것이었다. 나는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럼에도 굳이 덕분에 무사히 시술을 받고 나오셨다며 고맙다고 손에 선물을 들고 인사하러 오신 것이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좋은 분들이 또 있어,
빼고 더하면 그냥 보통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