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건강검진부터 성인 건강검진을 하다 보면, “하세요.”보다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초등학생들에게 “손 뜯지 마세요.”, “과자 먹지 마세요.”부터 어른들에게 “담배 피우지 마세요.”, “술 드시지 마세요.”까지. 그런데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아니, 매우 어렵다.
하루는 잦은 음주로 간이 나빠진 50대 남자 환자이 두 손을 잡고 간곡히 “더 이상 술 드시지 마세요. 큰 일 나요.”라고 부탁드렸더니, 환자가 다음날 울먹이면서 찾아왔다. 밤에 술을 안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평소 매일 마시던 술을 안 먹으니 밤에 할 게 없어서 잠도 안 오고 외로워서 힘들었다고, 그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다시 술을 먹게 되었다며 나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유명한 이름의 책이 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듣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반대로 ‘코끼리’라는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이는 의사가 환자에게 말할 때뿐만 아니라, 스스로 다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담배 피우지 말아야지.’, ‘술 안 마셔.’, ‘손톱 뜯으면 안 돼.’, ‘과자 먹지 말아야지.’라고 하는 순간, 사람의 머릿속에는 담배, 술, 손톱, 과자가 저절로 떠올라 담배를 피우고 싶고, 술을 마시고 싶고, 손톱을 뜯고 싶고, 과자를 먹고 싶어 진다.
정신과에서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방어기제’로 설명한다. 여러 가지 방어 기제가 있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처럼 생각이나 욕망을 잊으려 하는 것을 ‘억압’이라고 한다. 가장 기본적이며 원시적인 메커니즘이며, 사람들이 쉽게 선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억압의 경우, 앞서 말했듯이 ‘코끼리’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코끼리가 떠오르는 데다, 그 대상을 잊으려 하면 더 생각이 난다. 이를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풍선처럼 억지로 눌렀더니, 더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쁜 여자 친구와 쉽게 헤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근무하는 의정부에는 젊은 군인들이 많이 오는데, 10명 중에 7명은 담배를 피운다. 내가 금연 상담을 할 때 매번 하는 말이다. 그러면 “제가 먼저 차야죠.”라고 많이 대답하는데,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더 좋은 여자 친구를 만들면 됩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억압’이 아니라, 다른 습관으로 바꾸는 ‘대치’, 더 나아가서는 더 좋은 습관으로 바꾸는 ‘승화’이다. 술을 끊고 싶다면, 술을 참는 게 아니라, 술 먹는 시간에 운동을 하든지, 책을 읽어야 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최선은 ‘토끼’를 떠올리는 것이다.
삶 또한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수많은 상처를 받으며 나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미래의 좋은 기억으로 덮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