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삼계탕
중복이다. 무덥고 습한 여름을 절정을 달하고, 우리의 몸과 함께 마음도 늘어진다. 아무 것도 하기 싫고, 오로지 쉬고 싶다. 입맛도 없어 왠지 자극적인 음식이 땡긴다. 그럴 때는 한국인답게 매운 맛이 최고다. 다섯 가지맛을 뜻하는 오미(五味)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을 고집하지만, 매운맛 대신 감칠맛, 더 정확히는 우 마미(umami)가 매운맛의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냉면의 그 삼삼한 맛이 바로 감칠맛이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매운맛만 받아들이는 고유한 수용체가 없기 때문이다. 매운맛은 정확히는 통증을 느끼는 감각인 통감을 자극하기에 맛이 아니라 고통이다.
심리학자 폴 로진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고추는 그러니까 매운 맛은 정말 맛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진 그는 사람들에게 고추에서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을 과자에 발라서 주었다. 그것도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두 부류 모두에게. 그는 약한 맛으로 시작해서 사람들이 “도저히 못 먹겠어. 이제 그만.”할 때까 캡사이신의 양을 늘렸다. 그리고 실험이 모두 끝난 후, 사람들에게 어떤 (매운) 단계를 가장 선호하는지 물었다. 당연히 매운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안 매운 것을 좋아하고,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적당히 또는 상당히 매운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매운 것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없이 두 그룹 모두 매운 맛을 좋아했다. 그것도
자신이 견딜 수 있었던 가장 매운 단계
를.
앞서 말했듯이 매운 맛은 고통이다. 동물은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려 한다. 단 것을 삼키고, 쓴 것을 뱉는 것은 인간 이전 동물의 정상적인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은 평범한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경험인 고통을 즐기는 또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그렇기에 매운 맛을 찾고, 돈을 내가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공포 영화를 본다. 달리기, 그 중에서도 마라톤을 하는 사람도 있다. 동물을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마라톤 선수가 아니라 명예나 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님에도, 힘든 마라톤을 완주하여,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신기록에 도전한다. 마라톤은 고통스럽다. 특히 마라톤에서 결승점이 다와가는 35km 지점을 넘어가면, 마라톤 선수들은 자신의 한계에 달한다. 그 때, 우리 몸에서는 그 어떤 마약보다 강한 엔돌핀이 분비되어 쾌감을 느낀다. 엔돌핀, 말 그대로 몸 내부(endogeneous)의 모르핀(morphin)인 것이다. 엔돌핀이 분비되어 고통과 함께 즐거움이 찾아오는 러너스 하이인 것이다.
생명체인 인간은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견딜 수 있는 고통을 통해, 고통을 버텨낸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고, 힘들게 목표에 도달하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우리의 인체 또한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때 엔돌핀을 분비 하면서, 고통을 참을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즐거움으로 바꿔 주기도 한다.
몸과 마음이 축 쳐지는 여름이다. 의욕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귀찮기만 하다. 시원한 곳에서 아무 것도 안 하며 빈둥거리며 쉬고 싶다. 몸을 위해서 중복을 맞이해서 삼계탕이나 먹어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열치열로 더위를 극복하듯, 우리는 힘든 일이나 목표에 도전하면서 오히려 삶에 더 즐거움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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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K-공감에서 2주에 한 번씩 제가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