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살인 사건에 부쳐
세상이 무섭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구 잡이로 칼을 휘두르고, 어떤 이는 아예 언제 어디서 사람을 살해하겠다고 미리 예고를 한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마치 우리 주위에는 모두 살인범이나 잠재적 살인자만이 있는 것 같다. 거리를 걷다가, 이상하게 눈을 뜬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몸에서 뭔가를 찾는 사람이 보이면 ‘설마’와 ‘혹시’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워야 하나, 아니면 삼단봉이나 호신용 스프레이 같은 방어 도구라도 사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땅 위에는 대략 80억 명의 인구가 있고, 한국에는 5천만 명의 사람이 있다. 이 중에는 남을 위해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조만간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공공연히 소리치는 이들도 있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 보면, 여기가 지구에서 가장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엘살바도르나 콜롬비아, 멕시코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 한 사건에 대해 수십 개의 언론사에서 거의 비슷한 내용을 마치 복사하여 붙여 넣기처럼 보도하다 보니, 실제보다 훨씬 더 부풀려진다. 2021년 대한민국에서 살인으로 희생된 사람 수는 243명이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루에 한 명이 채 안된다. 하지만 같은 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 3,352명으로 하루에만 37명이 생을 마감했다. 살인에 비해 자살이 55배나 높다. 기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건을 부풀릴 수 있지만, 숫자를 바꿀 수는 없다.
세상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 내가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마찬가지로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딱 두 종류뿐이다. 남(밖)과 나(안). 내가 아무리 걱정하고 불안해해도 하루에도 나를 스쳐지 나가는 수백 명의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바꿀 수 없다. 심지어 친한 친구나 가족마저도 변화시키려면 일생이 필요하다.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불안과 걱정을 잠시 제쳐두고, 거울 앞에 서 보자. 거울이 없다면 핸드폰을 셀카모드로 해 보자. 그 속에 있는 사람이 지구상의 80억 인구를 모두 합친 것보다 위험한 사람이자, 당신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단 한 사람이다. 밖이 불안할수록 다스려야 하는 것은 밖이 아니라 안,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몸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할 지도 모른다. 몸을 보호하는 방어 도구만큼이나, 또는 이 이상으로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 도구가 필요하다.
사진 설명: <신림동 등산로 사건의 피의자 최모씨, 출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