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검사는 무수히 많다. 혈액 검사, 심전도, 엑스레이 같은 기본 검사에서부터, CT, MRI, 초음파, 뇌파까지 다양하다. 혈액 검사만 하더라도, 동네 의원급에서도 백가지 넘는 검사를 할 수 있다.
검사는 많고, 또 어렵기에 일반 사람들은 아픈 검사와 안 아픈 검사로 나누기도 한다. 생명체라면 통증을 피하려고 하기에 일단 아프면 무섭다. 잠시 따끔한 혈액 검사부터, 뼈를 뚫어야 하는 골수 검사나, 간이나 신장 조직 검사 같은 경우는 무지막지한 통증뿐 아니라 검사 부위에 출혈이나 감염 등의 위험이 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하며 극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반면 엑스레이나 심전도의 경우 번거롭기만 할 뿐 특별한 통증은 없다. 뇌파 검사와 초음파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런 검사 자체는 심전도나 뇌파를 측정하는 줄로 환자 목을 조르거나, 초음파 프루브로 환자를 폭행하지 않는 한 환자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종합병원에서 검진과 일반 진료를 담당하는 나는 하루에도 몇 개의 심전도를 판독한다. 심전도 하나를 판독하기 위해 의대 6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였고, 그것으로 부족하여 <한 권으로 끝내는 심전도>는 물론이고 다른 <심전도 속성 판독법>도 구매하여 보았다. 그뿐 아니다.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으면서 4개월간 순환기 내과 파견 근무를 했다. 그렇게 나름 열심히 노력하여, 수천 개의 심전도를 보았지만 겨우 정상과 정상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정도이다. 비정상이면, 즉시 내과로 보내고, 애매모호하면 내과 전문의인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서 확인을 요한다.
환자가 심전도 상에서 심근 경색으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만약 의사인 내가 정상으로 판독하면? 환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치게 된다. 즉, 검사를 하는 건 자체를 해롭지 않을 수 있으나, 검사 결과를 해석할 줄 모르면 해가 된다. 그것도 매우 심각한.
초음파, 그중에서도 산부인과 초음파는 극히 어렵다.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 자궁 초음파는 하는 의사는 산부인과와 영상의학과 의사뿐이다. 왜냐하면 초음파 자체는 방사선이 없어 사람은 물론이고 태아에게 무해하나, 초음파 검사 결과가 이상한 것인지 감별하지 못하면 환자에게 큰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려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27개월에 걸쳐 68회(12일에 한 번 꼴)나 한의사가 초음파를 했으나, 자궁내막암 2기를 전혀 진단하지 못했다. (자궁내막암이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궁 외 임신을 놓쳤으면, 환자가 즉시 사망할 수 있다.) 이로써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큰 해를 끼쳤다.
<초음파의 특징: CT와 달리 경계 등이 명확하지 않아, 시술자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또한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속이기 매우 쉽다> 출처1)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한 한의사가 뇌파 검사로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한다며, 신문에 기사가 나갔다. 뇌파, 파킨슨, 치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이 얼마나 얼토당토 되지 않는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말이 어렵기 때문이다.
뇌파검사.
<명색이 나도 의사지만, 뇌파 검사는 아예 볼 줄 모른다>
소아과 중에서도 뇌전증(간질)을 보는 소아 신경과와 신경과 만이 사용하는 도구다. 내과, 신경외과 의사마저도 아예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검사이다. 그럼 뇌파를 통해서 어떤 질환을 주로 감별하느냐? 주로 뇌전증과 뇌사 판정에 사용된다. 뇌파 검사로 절대로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하지 못한다. 쉽게 말하면,
이를 보도한 기자, 또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조차 그 한의사의 수준과 다를 바가 없다. 법원은 검사 자체가 해가 되지 않기에 한의사가 쓰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고 판결했지만, 그건 판결문이 쓰인 종이 자체로는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다. 중요한 건 종이에 쓰인 내용이다. 종이에 쓰인 검은 글자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 마찬가지다. 심전도, 초음파, 뇌파 검사 결과에 한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68번의 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자궁 내막암을 놓친 그 한의사와 뇌파 검사로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하고 치료한다는 그 한의사에게 오히려 초음파 검사와 뇌파 검사를 하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정? 사기꾼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뇌파와 초음파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같은 도구지만, 그 도구를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종이 또한 마찬가지다. 종이에 욕설이나 잘못된 판결을 쓰는 이가 해를 끼칠 뿐이다.
그 한의사는 왜 굳이 알지도 못하는 초음파를 했을까? 그럼 왜 그 한의사는 치매와 파킨슨과 전혀 상관없는 뇌파 검사를 하여,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하며 치료한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뇌파로 파킨슨과 치매를 진단한다고 했던 그 한의사는 이제는 분야를 바꿔 다이어트 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