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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Aug 18. 2023

천재 의사의 사명감

소아흉부외과 

 어른 엄지 손가락 두 개를 모아보자. 돌이 안 된 아이의 심장 크기다. 오른손 주먹만 쥐어 보자. 아이의 심장이 담겨 있는 가슴 크기다. 한 주먹만 한 가슴에 엄지 손가락 두 개만 한 심장이 들어가 있다.


 아이의 심장은 겨우 호두 크기지만, 구조는 어른과 같이 복잡하다.


<이걸 호두 크기로 줄이면, 아이 심장 크기다>  


 상대정맥+하대정맥=> 우심방=>(삼첨판)=> 우심실=>(폐동맥판)=> 폐동맥=> 우폐동맥, 좌폐동맥=> 폐

=> 우폐정맥, 좌폐정맥=> 좌심방=>(폐동맥판)=> 좌심실 =>(승모판)=> 대동맥 순으로 피가 들어와서 나간다.

 

 심장으로 들어온 피는 13개의 과정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문제가 생긴다. 각 혈관은 빨대만 하고, 판막은 종이만큼 얇다.


 의사로 최고의 덕목은 성실성이다. 의사에게 창의성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교과서를 바탕으로 최신 논문, 수많은 대가들이 닦아 놓은 길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된다. 그렇게 선배들이 닦아 놓은 탄탄한 끝도 보이지 않는 먼 길을 수십 년간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그러다 성실함에 운이 더해 길 끝에 도착하면, 다음 세대를 위해 벽돌 한 두 개만 깔 수 있다면 의사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다.


 하지만 의사 중에 가장 창의적이어야 하는 파트,
즉 천재가 필요한 곳이 있다. 
바로 소아흉부외과이다.  
 

흉부외과는 크게 1. 심장외과 2. 심장 외 식도와 폐 3. 소아흉부외과로 나누어진다. 산전 검사가 적었던 과거와는 달리 산전검사로 기형을 감별할 수 있어 현재 심각한 선천성 기형을 가진 환아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고령 산모가 증가하면서 분만은 물론이고, 복잡한 기형을 가진 아이가 늘고 있다.


 가장 어려운 환자는? 소아 환자이다. 의사 표현을 못하니까.

 수술하기 가장 어려운 환자는? 소아 환자. 작으니까.

 가장 어려운 중환자는? 소아 환자이다. 그 간단한 혈액 검사는 물론이고, 수액 줄 하나 잡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심장구조는 복잡하다. 그 복잡한 구조에서 그 모든 기형이 발생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하게 벽에 구멍이 났을 수도 있다(우심방과 좌심방 사이에 구멍이 생기면 심방중격결손,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에 구멍이 나면 심실중격결손이다). 멀쩡해야 할 혈관이나 판막이 좁아져 있을 수도 있고, 막혀 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예상치 못한 다른 곳으로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수천 가지의 기형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런 기형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가장 상상력과 창의성이 요구되는, 즉 천재가 필요한 분야가 바로 소아 흉부외과(선천성 심장 기형 파트)이다.


 소아 심장은 대부분 매우 어린 나이에 수술을 한다. 거기다 수술만 하면 무조건 중환자실로 간다. 그래서 소아흉부외과의사는 기본적으로 중환자를 보기에 성실할 뿐만 아니라, 작은 심장을 수술해야 하기에 손기술이 뛰어나며, 아이를 봐야기에 마음이 따뜻하고, 수천 가지의 기형이 있기에 상상력과 창의성까지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갖춰야 하는 의사가 바로 소아흉부외과 의사이다. 


 하지만 한 사건으로 그 모든 것을 갖춰야 하는 소아흉부외과 의사가 위험에 처했다.


 정훈이(가명)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복합 심장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다.


팔로사징(Tetralogy of Fallot).


소아과와 흉부외과 의사를 제외한 의사라면, 4개의 선천성 기형이 동시에 생긴 질환이라는 간신히 아는 질환이다. 그것도 이름에 팔로사(四)징, 숫자 사(四)가 들어가서 간신히 기억하는 질환이다.


  정훈이(가명)는 태어나서 얼마 안 되 팔로사징을 교정하는 1차 수술을 받았지만 심장의 기능은 자꾸 떨어졌다. 팔로사징 이외에도 시미타 증후군(Scimitar Syndrome)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혈관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좌심방으로 들어가야 할 폐정맥이 하대 정맥으로 들어가는 기형이 시미타 증후군이다. 기형적인 우폐정맥이 휘어진 터키 칼(시미타)처럼 생겨, 이름 붙은 질환이다. 


<좌측 폐정맥은 정상적으로 좌심방(LA)으로 들어갔으나, 우측 폐정맥은 기형으로 좌심방(LA) 대신 하대정맥(IVC)으로 들어가는 시미타 증후군 출처: 위키백과>

심장의 기능이 계속 떨어져 정훈이는 시미타 증후군을 치료하는 2차 수술을 받았다. 하대정맥과 연결된 폐정맥을 좌심방으로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Triple patch operative technique: 누가 봐도 어려운 매우 어려운 수술이다. 실제 크기를 상상하면 더더욱 출처 1)>


  심장 수술을 하려면, 심장을 멈추게 하고 인공심폐기를 연결하여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 어른은 심장이 크지만, 아이는 심장이 작다. 거기다 한 번 큰 심장 수술을 받았기에 심장 주위에 유착이 심했다. 수술이 끝나고 인공 심폐기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아이의 대동맥에 연결된 관이 빠지면서 혈압이 떨어졌다. "당시 의료진은 캐뉼라 탈락을 인지한 직후 다시 대동맥 캐뉼라 삽관을 시도하고 체외순환기 가동을 시행했으며 혈압 유지를 위해 약을 투여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했으나, 5분 동안 아이의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아, 아이는 영구적인 인지장애 및 언어장애, 미세운동장애 등 발달장애 후유증이 남았다.


https://medigatenews.com/news/3514364035


 부모는 병원과 의사에게 15억의 손해배상 청구를 했고, 법원은 "환자가 출생 시부터 선천적 심장 기형 질환을 앓았으며 수술 당시 1세에 불과한 소아로서 대동맥의 직경이 좁아 의료진이 매우 좁은 시야에서 수술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을 60%로 제한한다"며 재단법인 B에 8억 9900여 만원의 배상" 책임을 물었다.



<시미타 증후군은 케이스 리포트일 정도로 매우 드문 질환이다>

 

 케이스 리포트(case report)라는 게 있다. 의사들끼리 아주 희귀한 사례를 올려 공유하는 것이다. 시미타 증후군(Scimitar Syndrome)의 경우, 한국에서는 매우 드물어 가끔 한 두 건씩 케이스 리포트로 보고되는 정도이다. 국내에서 이 시미타 증후군을 수술해 본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어차피 우리나라 소아흉부외과 의사는 열다섯 명 정도에 불과하다.

https://m.medigatenews.com/news/1922778453


  한국에서 이 시미타 증후군을 수술해 본 의사는 몇 명이나 될까? 10명? 5명? 한국에서 이 수술을 가장 많이 해 본 의사는 일생동안 시미타 증후군을 몇 번이나 집도해 보았을까? 10건? 5건? 3건? 그럼 전 세계의 다른 의사들은 어떨까? 


 시미타 증후군 논문을 검색해 보니,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케이스를 실은 곳이 있었다. Columbia University Medical Center였다. 1994년부터 2015년 21년간 총 47명, 그중에서 중대한 선천성 심기형을 동반한 소아의 경우는 20명이었고, 이번 정훈이 같이 시미타 증후군에 팔로사징을 동반한 경우는 22년간 단 두 명에 불과했다. (1위는 10년간 68명을 연구한 A European Congenital Heart Surgeons Association (ECHSA) Multicentric Study로 말 그대로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취합한 것이라, 사실상 단일 기관에서 한 연구는 이곳이 전 세계 1등일 것으로 추정된다)



선천성 심기형에 더해 시미타 증후군을 가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Scimitar Syndrome in Children andAdults: Natural History, Outcomes, and Risk Analysis 출처 2)>


  안타깝게도 첫 입원 시 11명 중에 3명이 첫 입원 당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두 명은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살아남은 6명 중, 한 명은 심장 외 다른 이유로 사망했다. 결국 다섯 명이 남았으나, 한 명은 얼마 못 가 심장 문제로 사망했다. 9명 중 4명만이 살아남았지만, 4명 모두 어린 나이에 심부전(두 명은 1/4 단계, 한 명은 2/4, 다른 한 명은 3/4로 높으면 높을수록 안 좋다)을 가진 채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9억에 가까운 돈을 배상하게 된 소아흉부외과 의사 입장은 어떨까?


 1. 시미타 증후군의 수술은 일 년에 한 건 있을까 말까 했을 것이고, 이때까지 단독으로 집도한 경험이 열 번도 안 되었을 것이다. 병 자체가 워낙 드물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술법을 논문으로 낸 보스턴 대학도 겨우 7년 간 22건, 일 년에 3건 정도 하는 수술이다. 수술의 경우, 손에 익으려면 적어도 같은 수술을 수십~수백 건정도를 꾸준히 해야 한다.)


 2. 수술이 100% 완벽하게 성공해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예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9명 중에 4명이 사망하고, 살아남은 이들 모두 어렸을 때부터 심부전을 가지는 병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심부전이 있으면, 크면 클수록 심장은 더욱 나빠진다. 그 누구도 미래와 수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


3. 가뜩이나 작은 호두만 한 심장에 빨대만 한 가는 혈관, 1차 수술에 이은 2차 수술로 이미 심장에는 흉터와 함께 주변 장기의 유착으로 극도로 어려웠다.


 그럼 이것을 모를 리 없었던 소아흉부외과의사는 왜 손에 익지도 않은 고난이도의 수술을 했을까? 낯설고 어려운 난관에 대한 도전?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성취감? 물론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시미타 증후군을 수술할 수 있는 의사는 몇 명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가 나빴고, 결과적으로 15억의 60%인 9억을 배상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소아흉부외과 의사는 성실하고 탁월한 손재주에 따뜻한 마음, 거기다 기형이 워낙 다양하여 상상력에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사명감까지 모든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히 드물 뿐 아니라 매우 어렵고 9명 중에 4명이 사망하는 그런 질병을 수술했다가 결과가 나쁘면 최대 15억까지 물어줘야 하는 수술,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까? 

  


1. 출처:  Robert L. Geggel, MD , <Scimitar syndrome: A new multipatch technique and incidence of postoperative pulmonary vein obstruction>,   CONGENITAL: SCIMITAR SYNDROME| VOLUME 4, P208-216, DECEMBER 2020


2. 출처: Hanjay Wang, MD, David Kalfa, MD, PhD, Marlon S. Rosenbaum, MD,

Jonathan N. Ginns, MD, Matthew J. Lewis, <Scimitar Syndrome in Children and

Adults: Natural History, Outcomes, and Risk Analysis>,  VOLUME 105, ISSUE 2, P592-598, FEBRUARY 2018Y 2018ARY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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