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선생님, 이 약 세파계 항생제 아닌가요?"
진료를 받고 나갔던 30대 김정훈(가명) 환자가 처방전을 들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왔다. 세파계 항생제는 가장 흔히 처방되는 항생제 중 하나였는데, 그 환자는 세파계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뿐 아니라, 차트에는 빨갛게 <세파계 알레르기-처방 금지>라고 쓰여 있었고, 나는 그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처방을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환자가 많은 것도 아니었고, 나에게 특별한 근심걱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명백한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환자가 의사의 실수를 발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근 80대 파킨슨 환자에게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항구토제인 맥페란을 처방한 의사에게 금고 10개월, 집행유예 2년이라는 실형이 떨어졌다. 80대 고령의 환자라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는 점, 맥페란이 모든 파킨슨 환자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고, 거기다 부작용 또한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호전되며, 다른 사건(음주운전 중 사망사고 낸 BJ, 금고 10개월+집행유예 2년)과 비교할 때 분명히 과한 처벌이다. 조만간 민사 소송으로 최소 몇 천만 원에서 몇 억의 배상금까지 배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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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공적 보복'과 함께 '재발 방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런 과도한 처벌을 통해, 의사들에게 좀 더 환자를 볼 때 조심하라는 경고를 주고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구역/구토로 병원과 응급실로 오는 환자는 무수히 많다. 일단 원인이 뭐든, 증상을 완화시켜줘야 하는데 구역 및 구토로 알약을 먹을 수가 없다. 오로지 주사뿐이다. 여기서 문제가 된 맥페란이 등장한다. 항구토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맥페란은 400원으로 보험이 된다. 구역 및 구토는 사람들이 흔히 소화기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구토 중추가 머리에 있기에 신경도 관여를 한다. 맥페란은 이 구토 중추에 관여를 해서 구토를 억제한다. 그런데 같은 기전으로 문제를 일으킨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중추신경계에 문제를 일으켜 어지럽거나, 이번 판결에서처럼 파킨슨 환자의 경우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일단 이 재판 소식을 접한 의사들은 파킨슨이든, 아니든 맥페란의 사용량을 줄일 것이다. 원래 맥페란 자체의 부작용도 꽤 있는 편인 데다, 현실에서 환자의 병력을 일일이 모두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맥페란의 부작용으로 인한 문제는 확연히 줄겠지만 구역 구토로 오는 환자도, 그 환자를 봐야 하는 의사도 불편을 겪을 것이다.
거기다 파킨슨 환자에게 맥페란을 주는 사건은 감소하겠지만, 여전히 일어날 것이다.
<세파계 알레르기-처방 금지>
라는 경고창을 보고도 내가 세파계를 처방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다고 100% 막을 수는 없다. 개인이란 아무리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들,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나서야 한다.
처음부터 파킨슨 환자에게 금기약이 처방되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국가가 운영했으면 어땠을까? 이미 한국은 환자가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어떤 약을 처방받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다. 이미 특정 약이 중복 처방되었을 때, 이전에 어디서 약을 처방받았으며, 며칠 치가 중복되는지 경고창을 띄우며, 굳이 처방하려면, 처방 이유를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파킨슨 환자에게 맥페란을 처방했을 때,
<파킨슨 환자로 맥페란을 투여 금기입니다. 그래도 처방하시겠습니까?>
라고 경고창이 뜨고, 그래도 처방을 했을 때 사유를 쓰도록 한다면, 파킨슨 환자에게 맥페란을 투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는 의사마저도 섣불리 투여하지 않을 것이다.
실수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15만 명의 의사에게 개별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하나를 보완하는 것이다.
맥페란 사진 출처: 아산병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