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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의사 Jul 05. 2024

한 잔도 아닌 한 방울

어느 진상 환자 이야기

 환자는 3년 전부터 심혈관 계통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단순 고혈압은 아니었고, 입원까지 했으니 심부전이나 부정맥 등일 것이다.) 젊은 의사는 술을 ‘한 방울’도 먹으면 안 된다고 환자를 겁주었다. 술을 먹으면 ‘죽는다’라고 극언을 할 때도 있었다. 환자는 ‘한 방울’에 짜증이 나서 의사에게 물었다.


 의사는 “방울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을 끊으라는 말입니다. 반 방울도 안 됩니다.”라고 하자, 환자는 더욱 약이 올랐고, 병이 들어서 의사에게 몸을 맡기게 된 신세의 설움이 복받쳤다. 그래서 또 물었다.


 “선생님은 술을 안 드십니까?”

 “저요? 저는 술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의사의 말투는 자랑처럼 들렸다.


 “훌륭하십니다. 저는 한 50년 마셨습니다.”

 라고 환자는 의사를 칭찬해 주었다. 의사도 지지 않았다.

 “참, 대단하시군요.”


 의사는 지난 2주 동안에 술을 먹었느냐고 환자를 추궁했다. 의사한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 그저, 조금...”

 “무슨 술입니까?”

 “와인입니다. 독주는 안 먹었어요.”

 “얼마나 마셨습니까?”

 “조금 마셨습니까?”

 “조금이라면 얼마인가요?”

 “극소량입니다.”

 “그게 얼마입니까?”

 “극소량이라면, 미량이지요.”

 “미량이 얼마인가요?”

 “와인 두어 잔입니다. 잔을 가득 채우지는 않았어요. 그냥, 미량이지요. 요만큼.”

 “안 됩니다. 이러시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치료받은 것이 헛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방울을 한 잔으로만 바꾸면 진료실에서 흔히 접하는 풍경이다. 환자에게 술을 끊으라고 하면, 환자는 늘 “딱 한 잔만 하면 안 되냐?”라고 묻는다. 의사와 환자는 같은 편이지 적이 아니다. 대결이 아니라, 유머가 필요하다.     


 대부분 술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남자이다. 젊은 남자라면, 나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딱 한 잔’은 ‘손만 잡고 잘게’와 같은 말이죠. 다 딱 한 잔만 한다고 해 놓고, 한 잔이 한 병으로 이어집니다. 마찬가지요. 손만 잡는다고 하지만, 정말 손만 잡고 자나요?”     

<손만 잡고 잔다고? 출처: 인터넷>

 나이 든 남자라면, 나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딱 한 잔만 드실 수 있으면 드세요. 그런데 소주를 한 잔만 마시는 사람을 제가 살아오면서 본 적이 없어요. 다들 딱 한 잔만 드신다면서 한 병 이상 드시더라고요.”


 그러면 나이 든 분들은 모두 같이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 그렇지. 한 병도 아니고 한 잔만 마실 바에 안 먹고 말지.”     


 의사가 술을 딱 한잔, 아니 한 방울도 마시지 말라고 하는 이유다.     



  

 앞서 의사와 환자의 대화는 김훈의 신간, <허송세월> 18~19쪽을 나를 환자로 바꾼 채 그대로 인용했다. 담배도 끊으셨는데 술도 끊고, 오래 사셔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시길 한 명의 독자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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