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할 것인가
“선생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얼마 전에 90에 가까운 노모를 모시고 왔던 60대 아저씨였다. 그 말을 끝으로 나와 아저씨 사이에는 깊은 침묵만이 흘렀다.
"영양제 주세요."
아들인 보호자는 노모가 기력이 없다며, 처음부터 다짜고짜 영양제를 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요양원을 방문하여 본 치매가 있는 노모가 기력이 없자, 병원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일단 처음 보는 환자였고, 어떤 상태인지, 어떤 질환이 있는지, 어떤 약을 먹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영양제로는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의학에서는 사람의 의식 수준을 다섯 단계로 나눈다.
명료(alert)-기면(drowsy)-혼미(stupor)-반혼수(semicoma)-혼수(coma)
심한 치매 환자라서 대화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미 몸은 서기는커녕 앉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통증에 대한 반응은 확인할 수 있다. 생명체라면 통증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통증에 대한 반응 자체가 떨어져 있었다. 혼미였다.
"지금 어머니께서는 단순히 기력이 저하된 상태가 아닙니다. 의식 자체가 쳐져 있습니다. 영양제를 준다고 좋아질 상태가 아닙니다.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보호자인 아들은 무조건 영양제만 요구했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의사가 아니라 협상가가 되어야 했다.
“영양제를 줄테니, 동시에 혈액 검사를 합시다. 수액 맞는 동안,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니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동의했고, 한 시간 후에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염증 수치는 높았고, 심한 염증으로 신장기능까지 저하되어 있었으며, 심각한 전해질 불균형까지 있었다. 패혈증이었다.
“역시나 어머니 상태가 몹시 안 좋습니다. 단순히 영양제 문제가 아니라 몸에 심한 염증으로 무조건 입원 치료하셔야 합니다.”
“치료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돌아가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보호자의 눈빛만으로 보호자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입원치료 하지 않겠구나.’
나는 곧바로 진료의뢰서를 작성했다. 환자를 위한 서류인 동시에 의사인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문서였다.
“상기 환자, 요양원 거주 중인 환자로, 최근 의식 저하(stupor) 있으며, 혈압은...........”
그리고 보름 정도 지났을까, 아들만 혼자 진료실로 온 것이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얼마 안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그가 더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를 입원시키지 않았고,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래도 할 만큼 하셨습니다.”
“다들 그렇게 합니다.”
그가 나에게서 듣고 싶었던 건, 어쩌면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끝내 할 수 없었다. 그의 효도는, 딱 영양제까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지막은 과연 한 사람만의 문제이자 한계일까? 나는 묻고 싶다. 나는, 우리는, 사회는, 어디까지 할 것인가? 딱 영양제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