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관계, 그리고 인과관계
흑사병은 신의 천벌이었다. 흑사병이 유럽에 퍼지자, 세상이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한다는 의미로 가시 달린 채찍으로 자신의 몸을 내리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고행자들(The flagellants)’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을 보기 위해 길이며 광장으로 모였다. 수백 명의 고행자들은 길게 늘어서서 천천히 걸어가며 신음 대신 성가를 불렀다. 주로 성모 마리아가 나오는 성가였다. 고행자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 예수를 고통스럽게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성모 마리아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대신해 고통을 겪는 고행자들을 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흑사병은 신의 천벌이 아니라 페스트균(Yersinia pestis)에 감염된 쥐벼룩이 쥐와 사람을 물어서 생기는 병이다. 고행자들은 흑사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신의 노여움을 풀어서 흑사병을 물리치려는 고행자들의 깊은 뜻을 알리 없는 쥐벼룩은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뛰어다니며 복음 대신 페스트를 전파했다. 고행자들을 보며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죄사함 대신 흑사병을 얻었다.
자폐증은 슬픈 병이다.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한 사람과 한 가족을 괴롭힌다. 그런데 아직 정확한 기전을 모른다. 그 결과 수많은 가설들이 난무한다. 냉장고 엄마부터, 예방접종, 그리고 최근에는 타이레놀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임신 중 타이레놀을 먹은 임산부는
타이레놀을 먹지 않은 임산부에 비해,
조산 및 유산 그리고 기형 확률이 높아진다.
이는 타이레놀뿐 아니라, 혈압약, 당뇨약, 갑상선 약 모두에 해당된다.
타이레놀 및 혈압약, 당뇨약, 갑상선 약은
산모의 조산 및 유산 그리고 기형 확률을 낮춘다.
산모가 당뇨, 고혈압,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나 고이 있으면, 유산 및 조산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의사는 당뇨, 고혈압, 갑상선약, 타이레놀을 써서 그 확률을 낮춘다.
이와 같은 경우는 무수히 많다.
“(멀쩡하게) 걸어 들어간 환자가 죽어서 나왔다.”
이처럼 암에 걸려 병원에 가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피상적 결론을 얻을 수 있지만, 실제로 환자가 죽는 것은 병원에 간 것 때문이 아니라 암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가장 분명한 사실을 놓친다.
자폐증으로 고통받는 환자과 가족 모두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의사로서 분명히 말한다. 임신한 당신이 아파서 먹은 타이레놀 때문에 아이가 자폐증에 걸린 것이 아니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다. 자폐는 결코 당신 잘못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