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취업일기
회사 역량검사하다가 시간 다돼서 강제 제출된 사람? 그게 나예요…
직관적이고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질문은 주로 이런 식인데,
‘솔직히 말해서,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매우 그렇다, 그렇다, 조금 그렇다, 조금 아니다, 아니다, 매우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거지 항상 그런 건 아닌데?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짧은 시간 동안 한두 문제를 이렇게 망설이다 보니 301문제를 다 풀지 못하고 결국 제한시간을 넘긴 거다.
당황할 틈도 없이 바로 이어진 AI 면접은 그야말로 대환장파티~~
문제와 함께 30초의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고 재답변 기회가 한번 있는데 3번 정도 쓴 것 같다.
예상 문제였던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는 무난하게 지나갔지만 뒤에 4가지 질문은…
깔끔하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아… 어… 저 사실 카메라 울렁증 있어요! 라고 고백할 수도 없고ㅠ
정해진 답변 시간이 흘러가는 걸 보고 있으니 점점 더 쫄리는 심장… 아몰랑~ 좋은 경험으로 내맘속에 저장하고요.
그렇게 생애 첫 AI 면접을 마치고 이래 저래 찝찝했으나… 이제는 다 괜찮다.
AI 면접을 보기 전 2시에 또 하나의 면접이 있었다. 2명의 면접관 앞에 앉았고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달달 외워서 갔지만 묻지 않았다.
이력서를 낸 지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어서 포기한 곳이었는데 알고 보니 내 이력과 해당 직무의 갭이 있어서 적응할 수 있을지 내부 논의가 길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만나서 얘기해보고 싶어서 이제야 연락했다는데… 증말 속상할 뻔했잖아요~
면접 분위기는 좋았는데 합격 문자를 받기까지 안심할 수는 없었다. 작년에 한번 김칫국 마신 적이 있어서…
그리고 지난 금요일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 문자가 도착했다.
<합격 안내 - 저희 회사의 면접 전형에 최종 합격하신 것을 안내드립니다.>
마침내…
합격이라는 글자를 받기가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 맘고생 많았다는 남편의 말에 코끝이 찡~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취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일이 내 맘 같지 않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동시에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실감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시기에 나는 발리에 있어야 했다.
올해 결혼 10주년을 맞아 1년 전에 티켓을 끊고 숙소까지 예약한 상황이었는데 남편의 일 때문에 2달 전에 취소한 여행이었다.
예정대로 발리로 떠났다면 지금의 회사에 면접을 보거나 합격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저희 회사에 오시게 되면 연령대가 상위 그룹이세요. 경력은 많으시지만 이곳에선 신입이시잖아요.
20-30대 어린 친구들한테 배우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면접 당시 우아한 말투의 여자 대표님이 내게 물었다. 암요, 저는 너무 좋습니다. 월급도 주시고 일도 가르쳐주시다니요!
42살의 신입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회사가 있긴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고 출근길에 아아를 사는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떠올리니 즐거웠다.
재취업을 준비하며 깨달은 점은 지금까지 쌓아온 이력으로 나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경력 관리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지금부터라도 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1년 이상 장기간 일을 쉬어본 적도 구직이 이토록 어려웠던 적도 처음인데
위안이 되는 것은, 작가의 경험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분야의 신입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점이다.
처음 방송작가로 일할 때처럼 두근두근 떨리기도, 시작이 두렵기도 하지만 올해는 운이 트인다고 했으니 긍정회로로 맞서련다.
지금의 목표는 관련 자격증도 준비하고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하며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사회초년생부터 축적해 온 삶의 지혜를 무기 삼아 전쟁 같은 사회 속에서 다시 한번 살아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