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취업일기
요즘은 세컨잡은 기본이고 N잡러가 대세라는데 내게도 빛바랜 찍먹의 역사들이 존재한다. 태생이 프리랜서라 먹고살 궁리는 필수였으니까.
나의 첫 사회적 찍먹은 스무 살의 공순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전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봐야 한다며 일자리를 찾았는데 당시엔 교차로라는 신문이 취업사이트나 마찬가지였다. 여담이지만 교차로는 아직도 지하철 입구에 비치되어 있는 것 같던데… 생명력이 아주 대단함!
교차로에서 찾아낸 일은 속옷 와이어를 만드는 공장이었고 알바 경험이 전무했던 나는 그저 친구랑 같이 일하고 싶었던 마음에 집에서 왕복 3시간이나 걸리는 그곳을 열심히 다녔더랬다. 하얀색 가루 더미 속에 있는 와이어들을 긴 방향, 짧은 방향에 맞게 수십 개를 포개어 묶음으로 만드는 단순 노동이었고, 이모님들이 점심, 간식시간에 만들어 주시는 먹거리들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시급이 2300원인가 2500원인가… 한 달을 일해서 봉투로 받은 돈이 얼마나 소중하던지!
대학생 딱지를 떼고 찐 사회인이 되었을 때는 방송작가가 평생 직업이 될 줄 알았다. 10년이 지나고 콘텐츠 회사에 들어가면서 평생직장은 없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 때쯤, 퇴사 후 육아만 하던 대학 동기가 SNS에서 유아동복 쇼핑몰을 한다고 알려왔다. 재고를 쌓아두지 않고 도매에서 바로 보내는 방식이고 인스타로 판매하기 때문에 홈페이지 개설 부담도 없고, 한 달에 약 200만 원 정도 꾸준한 벌이가 된다며 내 귀를 솔깃하게 했는데… 그렇게 나도 사장님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인생 2막을 위한 공식적인 첫 찍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사업자를 내고 친구가 알려준 도매카페에 가입했다. 인스타에 베베**이라는 유아동복 쇼핑몰을 개설하고 이미지를 올렸다. 신기하게도 디엠으로 문의도 오고 판매도 이루어졌다. 아주 작디작은 마진만 남겼기에 10벌을 팔아도 손에 쥐어지는 게 별로 없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생활비는 벌겠단 희망회로가 켜졌다.
그러나 사업을 하면서 고려하지 않은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나의 성격! 사실 나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다. 누군가 단톡방에서 내 이름을 부르거나 주어 없이 화를 내면, 일단 내가 뭘 잘못했나?부터 생각한다. 간이 콩알만 하고 자책하는 건 아주 1등으로 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사람이 사장이 된 거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상품을 내가 도매업체에 주문하고 도매에서 바로 고객에게 보내는 방식의 장점은 말 그대로 재고 부담이 없는 것이고, 반대로 내가 상품을 검수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인데 만약 상품에 하자가 있거나 오배송이 되는 경우 그야말로 나는 전전긍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빨리 확인해서 새 상품을 보내야 하는데 도매는 바쁘기 때문에 연락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신속한 사과와 값싼 무릎이 탑재된 사장님은 고객에게 빌고 또 빌었다. 죄송합니다를 너무 많이 해서 오죽하면 고객이 그만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심지어 환불을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 + 불안, 초조함이 해일처럼 밀려와 ‘환불해 드릴게요. 옷은 그냥 가지세요.’ 기승전환불로 끝나기를 수차례. 몇 푼 안 되는 마진에 한두건 환불해주고 나면 홍보비와 도매사이트의 고퀄 사진 사용비로 투자한 금액까지 따져보니 결과적으로 손해였나?
게다가 나는 아이도 없어서 사이즈 공부도 조카를 앉혀두고 했었으니, 그나마 조카 옷을 도매로 싸게 산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아프니까 사장이다‘를 잠시 체험하고 약 1년 만에 폐업엔딩을 맞았다.
다음으로 선택한 직업은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 헬로~ 마이 네임 이즈 젤리!
영어라고는 해브와 디드를 겨우 구분할 수 있게 된 나로선 말이 안 되는 행보인데 영어를 어떻게 가르치냐고?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하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어린이집 선생님인 친구의 소개로 만난 캔디 쌤은 또 팔랑이는 내 귀를 마구 때렸다.
그렇게 교육이 시작되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캔디 쌤의 말에 젤리의 이름을 얻은 나는 영어 노래에 맞춰 율동을 배우고 시연도 해보았지만… 영어는 못해도 된다더니 그렇지도 않은 거다. 결국 영어와 자신감이 내 발목을 잡으며 4-5번의 교육 이후 자연스럽게 하차…
그 이후에 시작한 것이 한국어교원이 되기 위한 공부였고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돌아보니 참 가지가지 찔러보고 다닌 듯… 그런데 요즘 취업사이트를 보면서 또 새로운 영역에 눈이 번쩍한다는 게 문제!
이제는 좀 정착해야 하는데, 지금 하는 이 공부와 이력서 보내기가 마지막 찍먹이자 부먹으로 싹싹김치 될 수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누구라도 좋으니 불혹의 방황을 좀 멈추어 주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