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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형희 Jul 08. 2024

칠월 팔일 월요일

비가 오는 월요일이다. 장마라더니만 비가 쉴 새 없이 내린다. 습도때문에 가라앉아있지만 나쁘지 않다. 컨디션은 별로다. 별로긴 한데 못버틸 정도는 아니고. 별로일 수 밖에 없긴 했다ㅎ 이십대같지 않은데 너무 놀았지.


나는 금요일에 지역 클럽에서 테니스를 친 후 H와 P와 맥주 한 잔을 했다. 그리고 토요일 오전에는 N과 테니스를 쳤고 오후에는 L클럽에서 테니스를 쳤다. 그리고 뒷풀이를 하게 되어서 또 새벽까지 놀았다. 흠ㅋ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 금요일 오전부터였는데. 나는 몸이 썩 좋지 않아서 영어레슨이 끝난 뒤에 쉬려고 했지만ㅎ D가 클럽에 가 있는 줄 알고 방문했다가 제이에게 딱 걸렸다. 제이는 기회만 되면 나와서 놀고 싶어하는지라 그대로 집에 가지 못하고 제이와 P와 H하고 점심도 먹었다. 막상 자리를 하면 즐겁고 재밌긴 한데 몸이 피곤한건 어쩔 수가 없네ㅎ


장마도 오고 해서 느낀거지만 오전 테니스는 앞으로 안하려고 한다. 더운 것도 더운거지만 그동안 내가 테니스를 너무 많이 쳤다는 느낌과 동시에 이제는 테니스를 내가 하고싶은만큼 집중을 많이 했다는 느낌도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이 기계의 사용법을 알기 위해서 사용설명서를 정독했다.는 느낌이랄까. 사용설명서를 읽고 그걸 활용하는건 또 다른 문제지만 이 글자를 왼쪽부터 읽는지 오른쪽부터 읽는지 위에서 아래로 읽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는 어느 정도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전 테니스는 이제 그만하고 저녁 테니스를 하고 가끔 클럽을 가고 레슨도 받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오전에도 가고 가끔 콜하면 저녁에도 가고 그러고 있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저녁 모임을 조절해야할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스터디도 그렇고. 약속들을 저녁으로 재조정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저녁 스케줄이 늘어나서 우선순위 조정이 필요하겠다.


낮에는 이젠 일 좀 하자..^^ㅋㅋ 영어에도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야겠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된건지 모르겠지만 진짜 초등학생이 된 것 같다. 전에는 앉아서 일하는게 더 쉽고 운동하는게 어려웠는데 요즘엔 운동하는게 더 쉽고 앉아있는게 어렵다. 앉아서 집중하고 머리쓰고 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네ㅎ 확실히 운동이 앉아서 뭔가 하는 것보다 단순하다. 체력적으로야 힘들고 몸쓰는 일이 고되긴 하지만 머리를 많이 쓰진 않는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쓰고 밸런스를 맞추는 일도 쉽지 않네. 그래도 그렇게 해야한다.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리고..


내 일기장이라는게 연애와 테니스가 주 된 내용이긴 한데. 흠ㅎ 자꾸 철드는거 같기도 하고ㅎ


철이 든건지 철이 없어지는건지 아예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된건지..ㅎ


기준이라는 것도 어떤 사람마다 다른 것이어서 어디에 맞춘다는 것도 의미가 없기도 하고.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듯이 연애나 사랑도 마찬가지고. 모든게 다 가지각색이니까.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어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은 개개인의 성장 속도와 역량에 달려있는 일이다.


한 발 나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긴 하지.


주변의 커플을 봐도 그렇고. 부부를 봐도 그렇고. P의 얘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정신적인 성장이란건 공짜가 없는 법이다. 


최근에 H는 다른 친구를 사귀어서 P에게 받던 마음고생은 좀 덜 하고 있는 중인데. 애초에 왜 P와 친구를 하고 싶었는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이슈긴 하지만ㅎ 그날 H는 나에게 처음으로 나의 첫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H는 그렇다. 나처럼 조용하고 어딘가 사연이 있어뵈고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보면 챙겨주고 싶다고 했다. P와 나의 공통점을 보자면 뭐.. 그럴만도 하다. P도 겉으로 볼 때 말이 좀 없는 편이고 호기심을 자아낸다. 


H가 말하는 내 첫 인상이라는건 이전에 다니던 테니스 학원에서의 내 모습이다. 사실 나는 H를 인식하지는 못했다. 레슨받고 집에 가는데 바쁘지 뭐. 레슨시간이 내 뒷 타임이었던가.. ㅎ 지점을 옮긴 시기였는데. 그때도 많이 좋아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H는 내가 되게 힘들어보였다고 했다. 뭔가 쓰러질거 같고..ㅋㅋ 얼굴도 허애가지고 툭 치면 기절할거 같다했던가. 어느 날인가 너무 힘들어해서 내가 J코치님한테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잘 안난다ㅎ 힘들었던 시기는 대체로 잘 기억이 안나는 편이기도 하고. 아마도 내가 힘들었으니 레슨을 살살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울고 다닌 적은 없었는데 H가 말하길 내가 울고 왔다고 했다고 한다ㅎㅎㅎ 그런 적은 없을 것이다. 울었을지언정 말로 하고 다니는 편도 아니고. H의 기억에서 뭔가 나는 더 불쌍하고 처량해진 것 같다. H는 나를 챙겨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마도 H는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상처받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해서 이제서야 처음으로 얘기해 준 것이라 생각이 든다. 흠..ㅎ 그런거에 상처받으려면 한.. 23년 전 쯤이어야 되지 않을까ㅎ 


반면에 L클럽의 회장님 감사님은 내가 새침해보인다고 했다. 사람은 참 여러가지 면을 가졌고 사람마다 보는 면이 다 다른 것 같다. 그냥 그러냐고 했다. 내가 새침해보인다고 한들 그렇다고 덜 새침해보이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기도 하고. 나는 그냥 현재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지.


하여간 P도 그런 어떤 처량한(?) 느낌을 자아내는 편이다. 내가 어떤 사람한테는 새침해보이듯이 P도 누군가한테는 다르게 보이긴 하겠지만. 나는 P가 여러가지 면에서 문제가 많은 복잡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H가 특히 상처받는 부분에 대해서도 P는 자기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ㅎ 너무 어린 말이 아닐 수 없다. 원래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이야기가 길어졌다. 하지만 원래 그런 성격과 예의가 없는건 다른 문제다. P는 자신의 예의없음을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이해해주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여자가 걸려들지 알 수 없는거지만 P의 바람대로 어린 여자일수록 남자보는 눈이 없는 법이다.


어린 남자들은 대체로 그렇다. 이런 자신을 이해해달라거나 나는 원래 그렇다거나 불쌍한 척을 자주 한다. 자기연민이 짙어서 그렇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꽤나 어린 부분을 본다. 자기 연민. 열등감. 이기적인 면모. 예의없음의 합리화. 등등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떤 계기가 없이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지는 못한다. P는 나이가 들려면 아직 멀었다. 그리고 나는 P와 G와 R을 생각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체감하고 있다.


이해받고 싶음이 먼저가 아닌 이해해주고 싶음이 먼저인 부분에 대해서.


P가 물어보길 보통 여자들은 기대고 싶어하고 의지하고 싶어하는데 누나는 왜 어린 남자가 좋냐고 했다. 나는 대답하기 귀찮아서 남자가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정확히 쓰자면, 어린 남자가 좋은게 아니라 삶의 열정을 지닌 어른스러움이 좋은 것이다. 나이를 떠나서. 다만 확률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서 어린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남자들은 대체로 나이가 들면서 멋대가리가 없어진다. 삶에 자꾸 발이 걸려 넘어져서 그런거지만. 


나이가 어린 남자들이어도 저 사람은 믿을만하고 신뢰할만하고 의지할만 하다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과 명예와 사회적인 지위를 떠나서 의지할만한 사람들이라는건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인 사람이다. 같은 상황에 처해진다 해도 누군가는 안좋은 면만 보면서 투덜거리고 의심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면서 노력하지 않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그래도 이만하니 다행이라는 면이 있다. 투덜거릴 시간에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본인 스스로 가진 자긍심이 있어서 나를 대할때도 여유가 있다. 어떤 감정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다. 나의 삿된 마음가짐에 대해서 바른 자세를 유지시켜주는. 내가 보는 어른스러움이라는건 이런 것이다. 내 멘탈을 보호해주고 길러주고 유지시켜주는.


물론 나이가 많으면 사회적인 경험이 더 있기 때문에 어떤 해결책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보다 오래 일해서 돈이 더 많을 수도 있지. 나보다 노하우가 많아서 기술적인 면이나 사업적인 면에서 좀 더 유연함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도 랜덤이라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나보다 낫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경험은 무시를 못하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경제적인 면이나 사회적인 경험에 있어서 나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그건 매우 당연한거라ㅎ 그걸 기대하는건 아니다. 어차피 이런건 살다보면 생기는거다. 나이를 먹고 일을 계속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한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P의 질문에는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사회적인 면, 물질적인 면, 정신적인 면 등등. 글쎄.. 나이가 든다고 해서 과연 그 사람이 제대로 성숙했을까.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아져서 아는게 많아지는거지 자연스럽게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회에 찌들면서 열정도 너무 사그라들고.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많은 것들을 이해를 못한다. 이것도 안되는거고 저것도 안되는거고 네가 해봤자 이렇지 않냐 하는 말들도 지겹고. 결과가 너무 작기 때문에 안하면 대체 살아있는건지 모르겠다. 숨만 붙어있다고 살아있다고 수 있나.


성숙하다는 것은 관용과 유연성과 넉넉함이고 이건 나이와 상관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이 더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내 경험때문에 자기확신이 짙어지니까. 이건 나도 경계해야하는 부분이라ㅎ 가급적 다양한 면으로 보려고 하지만 쉽진 않다. 


아무튼 내가 바라는 성숙함, 어른스러움이란 단순하게 말하자면 (길게 썼지만), 나의 행복보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거라고 할까. 나의 이해받음보다 너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 나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도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뭐 그런거.


P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2년 전의 나는 꽤나 어렸지. 이런 저런 조건들을 걸면서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상처받기 싫고 나만 좋자고. 뭐, 당연히 조건을 안 볼 수는 없는거지만. 반대로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게. 서로 이끌어주고 받쳐주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되는건지 점점 잘 알 것 같다.


유머나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와 신념 등등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나도 챙겨주고 싶고 이해해주고 싶은 사람. 그 사람도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나를 지지해주고. 함께 있는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사람. 숨쉬는 듯 공기같은 사람. 비슷한 유머를 갖는 사람. 서로 같은걸 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나 좋을 때만 반짝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나랑 잘 맞는 사람. 그래서 서로가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즐거운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알고 나도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사랑이라면 참 설렐 것 같다. 기대가 될 것 같다. 즐거울 것 같다. 행복할 것 같다. 그리고 오래도록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세상에 없는 줄 알았지만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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