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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형희 Jul 27. 2024

칠월 이십칠일 토요일

습도가 정말 장난아니다. 이런 날씨에 작년엔 어떻게 그렇게 코트를 자주 나갔는지 모르겠다. 그땐 랠리가 된다는 것 만으로도 좋아서 이 날씨에. 그 더위에. 땡볕 아래서. 뜨거운 땅 위에서 그렇게 뛰어다녔었지..ㅎ


테니스를 할 줄 안다는건 좋은 것 같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한 사람도 보게 되고. 물론 이상한 사람도 널렸지만. 이런 인연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는 어제 지역 클럽에서 연기를 한다는 어린 친구를 알게 되었다. 테니스를 하면서 연기했었다는 사람은 더러 봤지만 지금도 현역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자주 보지 못해서 조금 흥미롭게 보았다. 연기라는 분야가 그렇다. 오래하기가 어렵지. 보장된게 하나도 없으니까. 이십대초반 연기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해 나가다가 포기하는 친구를 본게 숱하다. 어쨌든 뭐라도 먹고 살아야하고 직업을 가져야하고 운이 많이 작용되는 분야니까. 기다릴 줄도 알아야하고. 그걸 전공으로 한다는건 그만큼 진심으로 열정을 다 한다는 것이지만 그만큼 답답함도 크게 느끼게 되는 일들이 많다. 테니스에 진심일수록 늘지않는 실력에 더 크게 실망하고 더 크게 좌절하는 것 처럼. 특히나 실력만으로는 안되는 분야이므로. 때가 맞아야한다. 온 우주의 기운으로. 뭔가 사이비같은 소리이지만..ㅋㅋ 이 일이 그렇다. 인생이 내 의도대로, 내 뜻대로 되지 않듯이.


라켓을 바꾼 뒤로 공이 무겁게 나간다. 두껍게 나간다고 해야하나. 아직도 스핀은 무슨 감각인지 솔직히 모르겠다..ㅋㅋ 코치님은 스핀을 넣으라고 계속 하는데 뭔지를 모르겠다. 나는 스핀이 안된거 같은데 잘했다고 할 때도 있고 나는 잘한거 같은데 한 줄이라도 더 걸라고 하고. 뭔지 알 수가 없네. 레슨은 그냥저냥. 코치님들이 이러하고 저러하고를 떠나서 레슨 자체가 지겨운건 여전하다. 테니스가 좀 질린 것도 있다만. 운동 자체는 나쁜게 없다. 운동이 잘못하는건 없지. 운동하다보니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지겹고 질리는거지. 테니스가 좋은 운동이고 재미도 있지만 지겹기도 하다. 질리기도 하고. ㅎ.. 연애하는거 같네. 권태기다.


뭔가 나하고 잘 맞는 인연들과 연을 맺고 싶은데 조금 쓸데없는 인연들이 자꾸 생기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나는 요즘 P의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나는 딱히 궁금하지 않는 사람이다. 관심 밖의 사람이랄까. 그런데도 거의 매주 P에 대해 듣고 있다. H가 P를 좋아해서..ㅋㅋㅋㅋ H는 P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 이걸 뭐라 해야하나..ㅋㅋ H는 결혼한 사람이지만 계속 궁금한 사람이 자꾸 생기고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생기고 호기심이 생기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나는 H의 이런 성격이 재밌어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H가 누굴 좋아한다고 한들 선을 잘 지키고 약간의 흥미만 즐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H는 그동안 좋아한 남자가 꽤 많다. 멋있고 궁금하고 좋아하지만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좋아하는 남자가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미혼인 내가 그래야될거 같은데ㅋㅋ 하여간 원래 그러하듯이 그냥 휙 지나갈 인연이라 생각했지만 P만큼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H는 P가 짠하고 안쓰럽고 멋있고 그의 얘기를 듣는게 너무 좋다고 했다. 몸도 좋고 테니스도 잘치고 얘기도 재밌고 다양한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고 P가 H에게 관심이 있는건 아니라서 뭔가 좀..ㅎ 좋은 친구가 되자 하는 늬앙스로 가고 있지만. H는 P를 만나고 나면 데이트를 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내가 이걸 내버려둬도 되는건가 뭔가.. 싶은데..ㅋㅋ 그렇다고 뭔 일이 날것 같지는 않다만.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한들 H는 P에게 연락을 할거고 만나자 하겠지. 이성문제에 있어서는 타인이 터치할 이유가 없고 해봤자 하고싶은대로 하는 그런 문제지만ㅎㅎ 애매하네 이것도. 어떻게 그렇게 늘 새롭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건지도 참 신기하다. 인간의 감정이란.


나는 P하고 그럭저럭 좋은 친구까진 아니어도 코트에서 볼만한 친구가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한다. 어쨌든 호기심이라는건 다음으로 발전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으면 그냥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인간적인 호감으로. P는 어제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농담을 던졌다. 나도 튀는 부분없이 즐겁게 대화를 했다. 종종 P는 H한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묻기도 하고 나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기도 하고. SNS상으로 장난도 친다. 그럭저럭 테니스 잘 치는 아는 동생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나는 H처럼 P를 신경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H가 계속 P에 대한 얘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하는 통에 P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H는 내가 P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길, 제가 왜.. 그래야하는건지..? 라고 했더니 H가 웃었다. (나는 H의 이런 점이 편하고 좋다. 물론 가끔은 H가 상처받을만한 말은 피해가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긴 하지만 나의 많은 생각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어쩌면 P가 나한테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순 있을지라도 나는 P한테 별다른 영향을 받을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P와의 만남이 나한테 좋은 영향을 미치는건 아니라는 생각에서. 물론 테니스를 잘치긴 하지만.. 그게 인생에 큰 의미가 있는건 아니니까. 나는 내 삶의 태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게 더 좋으니까.


H가 P를 좋아하는 통에 나도 P와 만나는 일이 잦았다. 이런 애매한 관계성이란..ㅋㅋ 나는 P와의 대화가 재밌거나 감명깊진 않다. 물론 웃긴 농담에 잘 웃긴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하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대화의 질이 너무 나하고 안맞는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P가 나에게 어떤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A라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P가 자기는 B라는 가수를 좋아하는데 A라는 가수의 마케팅에 가려져 빛을 못봤다고 했다. 자긴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P는 늘 나는 그래 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쓰는데 자기 피력이 강한 편이다) 나는 이런 대화가 참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편이라 그 얘기는 거기에서 종료시켰다. 그리고 다른 대화로 넘어가게 두었다. 같은 종류의 대화에서 R은 달랐다. 내가 R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데. R이 나에게 좋아하는 노래에 대해서 묻기에 나는 똑같이 A라는 가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자 R은 A라는 가수의 노래 중 어떤걸 제일 좋아하냐고 했다. 그래서 난 플레이리스트를 켜서 내가 듣는 노래를 보여주었다. R은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면서 자기도 이런이런 노래를 좋아한다고 했다. A라는 가수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알려주면서 노래를 추천해주었다. 그렇게 R과 나는 서로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고 나는 R에게 추천받은 가수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나는 R과의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 시간가는 줄 몰랐지.


말하자면 이런거다. P의 대화처럼 분석을 하는 일이나 누가 더 뛰어나느냐 누가 더 대중에게 먹히냐 어떤 사람이 운이 없느냐 하는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일은 나는 굉장히 피로감을 느끼는데 내 직업 자체가 그렇다. 나의 프리랜서 삶이라는건. 어떤게 먹히는지 봐야하고 어떤게 더 순위가 높은지. 어떤게 대중에게 어필이 되는지. 운빨도 따져야하고. 내가 고쳐야할 점도 봐야하고 요즘의 트렌드도 봐야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익히지 않더라도 인식을 하고 있어야하고. 나는 늘 내 직업에 대해서 곤두서있는 사람인데 평소대화까지 그렇게 분석적으로 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피로함이 몰려오는건 그런거다.


게다가 P는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라 늘 자기 생각을 말하는데 바쁘다. 분명 이 대화의 주제는 좋아하는 노래가 주제였는데. 어느새 어떤 가수가 뛰어난가 어떤 가수가 마케팅으로 성공했나. 그런 주제로 넘어가있었다. 이게 대화인건지 뭔지.. 나는 누가 더 뛰어난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걸 얘기하는거지. 늘 이런식이다. P의 대화의 끝은 늘 자기 얘기로 마무리가 되어 있다. 자기 생각.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자기의 이야기. 자기의 신념.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하고. 자기 의견이 너무 강해서 별로 대화하고 싶은 스타일은 아니다. 고집도 쎄고. 자기말이 다 맞는거고 나머지는 청중이 되주어야 하지.


나는 또 가만히 있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종료시키고 싶을 때면 대화를 끝내버리고 영 마뜩찮은 부분에는 농담을 하면서 그런 생각에 대해 건드리곤 한다. 그러면 P는 그런 농담을 좋아해서 웃곤 하는데 자기 얘기에 나처럼 대응하는게 신선한가보다. 나는 P가 딱히 신선하진 않다. P같은 유형의 남자들은 너무 많이 보았다. 특히나 내가 어렸을 때 호감이 가곤 했던 남자들은 대체로 이런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때만 해도 에너지가 넘쳤고 갑론을박하는걸 즐기곤 했다. 토론같은거. 그러면 이런 유형의 남자들은 자기 신념의 강하고 자기 얘기를 너무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얘기하는게 재미없진 않았다.


하지만 P같은 유형의 사람들과의 만남이란건 기가 질리는 법이다. 모든게 다 자기 말이 맞는거고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해야하고 호불호가 강하고 자기 의견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런 유형. 자존심쎄고 고집쎄고 자기얘기만 하고 자기신념이 강하고 남이 본인을 이해해주기를 끊임없이 바라는 부분에서. 유별날게 없다. 이런 유형의 남자들은 대체로 비슷하고 꽤 많다. 별스럽지도 않고 신선하지도 않고 매력적이지도 않고 관심없다. 내가 관심가는건 R처럼 대화가 편안하고 대화의 질이 높은 사람들이다. 잘 없지만.


H는 P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저런 고집스럽고 자기중심적인 부분마저 귀엽다고 했다. 어리광부리는거 같다고 하던가. 난 피곤하던데. 피곤하다. 자기한테 함몰되어 있는 남자들이란. 늘상 가까운 사람의 고혈을 짜내는 법이지. 남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남의 수고스러움과 고통과 고민과 번뇌에 아무 관심이 없다. 늘 자기가 먼저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니까.




대화가 즐겁고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ㅎ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비교하는게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G가 가까이 살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내가 G한테 별달리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도 느낀다만ㅎ G는 어떤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어떤 가치관을 가진건지. 어떤 삶의 태도를 바라는지. 그런게 궁금하다. 그동안 워낙 농담만 주고 받아서 진지한 얘기는 못했지만..ㅎ 기회가 되면 G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다.


뭐.. 인연이 그럴 시기가 아니라서 G와 어긋나더라도. 그런 좋은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 인생에 이런 인연 하나 있다면 삶이 참 풍족할텐데.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열심히 살아가보자.


어느 날 어느 만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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