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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형희 Jul 23. 2024

칠월 이십삼일 화요일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 일 없이 넘어갔다. 이걸 좋다고 해야하는건지 나쁘다고 해야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한번씩 힘에 부칠 때면 다 때려치고 싶지만 어디 그럴 수가 있나. 내 맘대로 그럴 수 없다는게 인생이겄지..ㅎ


이거고 저거고 다 귀찮아도 일정이 있으면 일정대로 움직이고 그러다보면 또 새로운 것도 보게 되고 접하게 되고 다시 리프레시도 되고. 또 새롭게 얻는 것도 있고ㅎ


H하고도 한참 이야기한 것이지만 테니스가 질리기도 하고.. 해서 다른 취미생활 뭐 할게 없나 기웃거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테니스를 그만둘 생각은 없지만. 어차피 테니스라는게 구력이 중요한 분야다보니 안그만두고 하다보면 감이 떨어지지야 않겠지. 레슨은 언제까지 받아야하나 하는 생각이 있다. 그렇다고 이걸 오년 십년 계속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제 슬슬 레슨을 쉴까 하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내가 이전 학원을 그만둘 때도 옮기는게 아니라 레슨 자체를 받고 싶지 않았던 심정이기도 했고. 그냥.. 지겨워져서. 레슨을 조금 더 받는다고 해서 큰일날건 아니다 생각해서 그룹레슨을 받기 시작한건데 그룹레슨도 슬슬 지겨워지고 있다ㅎ 한번씩 새로운걸 배울 때면 재밌기도 하지만. 공을 치는 행위에는 다른게 없기도 하고.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자니 코치님 스타일을 아직 다 배운건 또 아니고. 약간 애매하네ㅎㅎ 라켓잡는것도 다 바뀌어있는데. 흠.


오늘 모임에서 얘기를 할 때도 그렇고. H하고 얘기를 하면서도 그렇고. 내가 R에게서 느낀 편안함과 신뢰와 믿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랑 비슷한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한 것인데 자기애가 지독한지도 모르겠다ㅎ 그렇지만 나보다 더 배려가 많고 나보다 더 이해심이 많고 화가 없고 나보다 더 예의가 바르고 더 선한 사람. 인격적으로 배울 점이 있는 부분. 나와 잘 맞는 개그코드. R은 말을 참 잘했는데 삶의 경험치가 높은 편이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능숙했다. 잘 녹아들 줄 알았고. 유머코드가 나하고 잘 맞았다. 날 웃기기도 잘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점은 혼자서도 잘 지내는 부분이다. R은 FM적인 삶을 사는지라 여가시간이 많지 않지만 그 와중에도 짜투리 시간을 허투로 쓰는 편은 아니었다. 책읽는걸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고 심지어 음악취향도 나와 비슷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쓰는 부분이 나와 비슷해서 꽤나 신뢰가 갔다고나 할까. 불안함이나 감정기복이 전혀 없는 부분. 난 그런게 좋다. 게다가 나와 활동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내가 하는 고민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도 했고. 물론 그 모든게 잘 맞는다고 해서 만남이 된 건 아니지만. 내 나이를 잊게 하는 부분도 좋았다. R에게 나는 그냥 관심가는 여자일 뿐이지 관심가는 나이많은 여자는 아니었다. R앞에서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여자일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었다. 날 있는 그대로 봐주는 선한 마음, 올곧은 마음이 나를 차분하게 하고 평온하게 했지만. 그가 아무리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해도 내가 그러질 못했다. 어쩌면 그때도 나는 사랑할 준비가 안되었는지도 모르겠다.


P는..ㅎ 흠. 잘 모르겠다. 나는 P에게는 별 관심이 없는 편이긴 하다. 내 말에 잘 웃는 사람을 보자면 P도 그러하고. R도 그랬고 G도 그렇다. 지금은 연락을 자주 안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K도 그랬다. 나는 대체로 잘 웃겼고 나는 R의 농담에 잘 웃었다. G한테는 대체로 까분 편이고. K는 가끔 웃겼고 가끔 벽을 느꼈다. P는 내 말에 잘 웃지만 나는 P가 웃기진 않는다. 터무니없는 농담을 하는 통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웃음이랄까. 농담을 잘 하는 친구긴 하다. 유머를 모르는 친구는 아니지만 글쎄.. 그렇게 썩 재밌다는 생각은 안해봤다. 나하고 유머코드가 딱 맞는건 아니지만 그래. 농담을 모르진 않다. P는 혼자 있는 시간도 잘 보낼 줄 알고 음악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한다. 콘텐츠가 많은 편이라고나 할까. 할 말이라고는 운동밖에 없는 제이와는 다른 부분이다. 제이와는 테니스 얘기가 아니면 뚝뚝 끊겨서 별 대화는 안이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난 P가 궁금하진 않다. 그가 가진 기본적인 성격 탓에. P는 복잡한 사람이다. 그의 가정환경. 자라온 환경과. 까탈스러운 성격. 예민한 부분. 피해의식과 열등의식. 웬만한 남자들은 대체로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생각해보자면 그리 유별난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성질이 지겨운지 오래다. 그의 라이프스타일. 그는 놀랍게도 테니스에 미친듯이 올인한 상태인데 나는 그게 잘 이해가 안되기도 한다.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ㅎㅎ 올인한 덕에 잘하긴 한다. 근데 뭐.. 선수할 것도 아니고 굳이. 게다가 자기가 테니스를 잘하기 때문에 내가 본인을 좋아할거라 생각하는 그 황당함은 뭔지 모르겠다..ㅋㅋ H는 그게 귀엽다고 했다. 도대체 H는 뭣때문에 P가 좋은건지 모르겠다. H는 확실히 P를 남자로 끌려하고 있다. 사람의 감정이란ㅎ H가 P를 정말 좋아하지. 도대체 무슨 매력인지 나만 모르는건가..?ㅋㅋ 인기가 많아. 성정과 인성이 좋아야지. R처럼. 선한 사람.


난 참ㅎ R을 알게 된 이후로 남자를 보는 기준이 R이 되어버린 웃긴 상황에 있다. R도 당연히 단점이 있다. 세상살이에 어리다는 점에 있어서. 그래도 그런 사람 보기가 어렵지. 이런 세상에서. 자신의 장점도 농담으로 넘길 줄 알고 실패도 스스럼없이 얘기할 줄 알고 피해의식이나 열등감도 없고.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사회에 이바지하고 싶어하고. 자존감도 높고 수용과 이해가 빠른 편이다. 똑똑하지. 세상살이에 어린건 살아가면서 채워질 것이다. 감정의 소용돌이도 한번씩 거쳐갈테고. 어리다는건 참 할게 많네. 풋풋해ㅎ


그 투명함이 더욱 더 날 평온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P가 나에 대해서 엄청 물어봤다는 얘기를 전해주었다. P가 나하고 나이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다는 점은.. 내가 나이때문에 고민할 일이 없긴 하지만 별 매력은 못느끼고 있다. 근데 뭐.. 모르지 뭐. 인생을 누가 알랴. 흘러가는대로 두련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는게 최근 몇년간의 내 연애사였던지라.


뭐든 자연스럽게 되겠지.


그래도 난 R이 궁금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의지는 없다만 뭐하고 사나 궁금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때 그 대화들이 떠돈다. R같은 사람과의 대화는 늘 즐겁지. 지나간걸 뭐 어쩌겠냐 싶기도 하지만. 언젠가 R보다 더 딱 들어맞고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만나지는 사람이 있겠지. 어떤 역경도 없이. 고민도 없이.


오늘이 그 과정이라 생각하는 중이다. 나하고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한 과정.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더 좋은 일을 하고 싶다. R처럼.


R을 닮아가고 싶다. 나이를 떠나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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