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열쨋날

1025_마드리드 1일차

by Simba

파리에서의 기억은 마지막까지 암울했다. 나름 덤덤하게 짐을 챙겨 9시 반경 버스를 타러 왔다. 살짝 빠듯했지만 비행기를 놓칠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비를 내고, 기차도 타고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다. 기차표를 검수하는 역무원이 있었다. 나와 한 여자를 불렀다. 뭔가 잘못됐는 지 멀뚱히 보고 있자 돈을 더 내라고 했다. 내가 산 표는 파리안에서만 사용가능하다고 했다. 3유로 인줄 알았는데 35유로를 내라고 했다. 장난하나. 30분 남짓오는 기차를 40유로 가까이 내고 탄단 말인가. 5만원가량 되는 돈이다. 안낼 수 없을테니 40유로를 줬다. 유일하게 기분이 좋았던 건 5유로를 돌려줘야 하는 데 20유로를 거슬러 줬다는 거다. 역무원이 정신이 없는 건지 내가 계산을 잘못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준 돈을 집어넣고 가는 길을 물었다. 설상가상으로 역을 하나 지나쳐 내렸다. 확실히 난 스스로를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두 그렇겠지만, 난 어느정도 나를 신뢰하는 듯하다. 경험이 쌓인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인 판단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렇게 멍청하진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좋은 일이다. 더불어 자존감이 낮지 않다. 오히려 조금 높은 편이다. 지기(知己)를 잘하는 듯 하다. 스스로를 잘 안다는 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부엘링 항공은 최악이었다. 다른 건 다 좋았지만 수화물 규정이 10kg밖에 되지 않았다. 내 짐이 약 15kg정도 되니 초과는 맞다. 그렇다고 50유로를 더 내라니. 악다구니 쓴다고 돈 안받진 않을 테고 시키는 대로 내고 탔다. 비행기 값이 13만원 정도. 20만원 가량 내고 파리에서 마드리드로 가다니 돈을 유럽 하늘에 뿌리고 다니는 구나 싶다. 비행기 탑승감은 유럽 항공들이 대체적으로 좋았다. 국내 항공기들은 흔들림이 많고 이착륙시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는데, 해외 항공사 탑승시에 그런 느낌은 아직까지 없었다.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마드리에 도착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드리드는 모든 게 좋았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다행히 대부분 영어를 조금씩 할 줄 알았다. 영어를 쓰면 거부감을 보이는 파리지앵들과는 달리, 영어와 여행객들에 개방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지하철도 한결 편했다. 물가도 파리보다 저렴했다. 숙소를 찾는 데 살짝 애먹었지만, 방도 마음에 들었다. 지리적으로 마드리드 중심에 위치한 숙소는 문을 열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눈 앞을 채운다. 집주인으로부터 대충 설명을 듣고 한식당을 찾으러 나섰다. 한식당이고 일식당이고 죄다 브레이크 타임이다. JCB카드 확인 차 가려고 했는데,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다. 지나오는 길에 웬 뷔페가 눈에 띄었다. 유럽에서 뷔페라니 가격도 10유로 정도였다. 현금을 쓰더라도 배는 양껏 채우겠다 싶어 들어갔다. 주인은 영어를 할 줄 알고, 일단 말이 통하니 기분이 좋았다. 신용카드를 건넸다. 왠일. 사용이 된다. 알고보니 마드리드에서는 왠만하면 JCB카드를 받고 있었다. 마드리드는 안좋아 할래야 안좋아 할 수가 없다. 뷔페에는 닭고기와 돼지고기, 심지어 볶음밥 종류와 각종 채소, 파스타와 빵이 있었다. 심지어 콜라도. 왜 마드리드를 4박만 정했을까. 배를 두드리며 마드리드 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방을 찾았지만 못찾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마드리드 시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수많은 종류의 음식은 마치 야시장을 보는 듯 했다. 수많은 여행객들은 이것 저것 호기심에 맛을 보고 있었고, 내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4일동안 얼마나 먹어볼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밝고, 음식이 맛있다. 지중해가 둘러싼 지리적 이점 때문인가. 그리스를 포기한 게 내심 아쉽다. 비엔나 커피가 눈에 띈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다. 가슴이 셀렌다. 당장 주문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 기대한 생크림이 아닌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 줬다. 옆 커플이 주문한 모카 커피가 탐났다. 내일 다시 와야겠다.


마드리드는 생각보다 작았다. 누군가의 말처럼 걸어서 대부분 이동이 가능하다. 물론 중심가만 그렇지만, 골목 골목을 다니다 보면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들, 영화에 나올 듯한 빌라들이 늘어져있다. 여행 중이라서 예쁘게 보이는 건지, 디자인을 잘한 건지 모르겠지만, 작은 노트가 유독 마음에 들었다. 3유로면 4천원이 넘는 금액인데 하나를 샀다. 여행 중이니 구매도 즉흥적이다.


서울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 고민됐다. 이미 어제 식탁보 하나를 샀다. 난 약간의 감각이 있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을 안다. 돈을 아끼고 아껴 선물을 다르게 사야겠다. 나름 이벤트를 좋아한다. 남들이 좋아할 때 그저 좋다.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다.


3시간여를 돌아다니다 숙소로 왔다. 4일간의 머무름이 아쉬울 것 같다. 엄마,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밋업에서 파티 정보를 확인했다. 신청을 해볼까. 하루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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