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_로마 1일차
십사일째. 신나게 놀고 자고 일어난 나는 크리스티나에게 작별 인사를 못한채 집을 나왔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티나는 아침일찍 일을 간 모양이었다. 방을 대충 청소하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 시간인 11시에 맞춰 집을 나섰다. 열쇠를 책상위에 두고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낸 뒤 문을 닫자 마자 깨달았다. 샤워 타월을 두고 왔다는 것을. 꼭 이런 건 열쇠를 놓고 나오면 기억이 난다. 그냥 로마 가서 새로 사기로 했다. 4시 반 비행기라 사실 시간이 많이 이르다. 배도 고프지만 공항에서 비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난 아낄 땐 독하게 아끼지만 한 번 놓기 시작하면 덮어두고 쓰는 편이다. 아마도 이스탄불과 런던에서는 숙소에서만 지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우선 공항으로 가서 식사를 했다. 햄버거와 콜라와 감자까지 12유로를 조금 넘었다. 만오천원 정도. 맛도 있고 배도 불렀다. 담배를 피고 체크인을 하러 갔다. 유럽여행은 총알이 많이 필요하다. 당연하지만, 플러스 되는 것 없이 마이너스 천지다. 이번 세관 통과 때는 피같은 왁스를 빼앗겼다. 왁스는 액체류로 분류가 안되기 때문에 100ml가 넘어도 상관없다던 친구 말과는 달랐다. 여태 캐리어에 넣어 보냈던 왁스를 기내에 들고 타려 했고, 담당자는 물과 함께 버려야 한다고 했다. 부엘링 항공은 또 다시 나에게 수화물 규정을 들이대며 50유로를 더 내라고 했고, 왁스와 함께 50유로를 빼앗긴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다 뺏어가라. 출국은 마음이 안좋지만, 그렇다고 마드리드는 싫어할 수 없다. 유럽 다른 국가는 몰라도 마드리드는 왠지 다시 올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추억을 안고 로마로 향했다.
생각보다 연착된 비행기가 로마에 일찍 도착했다. 추가로 100유로를 더 낸 부엘링 항공이지만, 이번에도 비행기는 안정적인 이착륙을 보여줬다. 비도 오고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니지만, 유럽의 항공사들은 이착륙시 흔들림이 크지 않다. 로마 도착시 가장 궁금한 점은 영어의 사용 여부였다. 파리와 마드리드를 가르는 나의 가장 큰 호불호는 영어였다. 영어를 공용어 취급도 하지 않는 파리인들과,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마드리드 사람들은 영어의 가능여부가 여행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느끼게 해주었고, 이는 앞으로 내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될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로마는 영어 사용에 자유롭다. 파리만큼 언어에 있어 자부심이 크고, 마드리드만큼 영어의 생활화가 잘 되어있다. 특유의 눈치로 기차를 타고 14유로 정도의 적당한 가격으로 미리 예약한 한인민박 근처까지 갈 수 있었다. 민박집 사장님은 픽업을 해주겠다고 했다. 공항에서 픽업을 하면 50유로라 신청하지 않았는데, 선뜻 먼저 기차역에서 기다리면 마중을 나오겠다는 것이었다. 사장님과 스텝분들은 화교분들이셨다. 조식과 석식이 모두 제공되는 민박집이기에, 식비는 조금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1인실을 5박 예약했는데 2인실을 줬다. 방은 충분히 넓고, 수압은 약했다. 밥은 무난했고, 배를 채울 수 있음에 만족했다. 마주한 방들은 도미토리로 한국인 여행객들이 시끌시끌했다. 로마에서는 혼자 쉬어갈 요량으로 1인실을 잡았기에, 혼자 큰 방을 쓰는 것에 나름 편안했다. 저녁은 이모님이 추천해주신 한인 식당을 갔다. 김치찌게가 13유로. 그저 로마 물가가 비싸구나 했지만, 여기만 비싼거였다. 짜고, 고기도 없었다. 로마에서는 한인 식당이 별로인 것 같다. 카드도 되질 않아서 남은 20유로를 다썼다. 덕분에 현금은 바닥났고, 내일 인출을 해야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