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십육일날

1031_로마 3일차

by Simba

조식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전날 민박집 아주머니를 따라 갔던 건물로 가니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두드려도 보고 열쇠를 넣어도 봤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건물들은 큰 나무문을 정문으로 쓰고 있어서 그 위압감이 더하다. 짜증이 났다. 어제 저녁에도 바뀐 호텔 이름을 알려주지 않아 경비가 막고 들여 보내주지 않더니, 아침에는 문을 닫고 어쩌란 말인가. 밥을 먹지 말까 고민하다 호텔 사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맨 위 버튼을 누르랜다. 진작에 알려주지 하는 생각에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도 문이 잠겨있다. 이내 사장 형이란 분이 오셔서 문을 열어줬다. 아침 먹으러 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텐데 문을 굳이 굳게 잠그고 있어야 할까. 어쨌든 미역국과 함께 아침은 맛있게 먹었다. 옆사람 이야기를 들으니 도미토리 사람들은 이미 아침을 먹고 나갔다고 했다.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워킹투어라도 하는 모양이다.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은 휴식을 취할 요량이었기에 먹고 다시 잠에 들었다.


11시쯤 일어나 씻고 정리를 했다. 아침마다 청소를 해주려는 아주머니에게 굳이 괜찮다고 손사레를 쳤다. 타월만 바꿨다. 굳이 혼자 쓰는 방에 노동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주어지는 서비스니 내일은 청소를 부탁해야겠다. 씻고 점심을 먹으러 거리로 나섰다. 숙소를 조금 벗어나 어제 지나쳤던 피자집을 두리번 거렸다. 테라스가 있는, 카드가 되는 곳이었다. 피자는 7유로, 콜라는 3유로, 10유로 정도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남유럽은 대개 물가가 그 정도인 듯 하다. 10유로면 한국돈으로 13,000원 정도인데, 이제 그 정도는 비싸게 보이지도 않는다. 통장 잔액을 확인할 때 마음이 쓰라릴 뿐이다. 한국에서 벌어 유럽에서 쓰는 여행객에게 환율은 잔인하다. 그래도 파운드화에 비하면 유로는 덜한 편이다. 영국에 머무를 이 여행의 종반은 결코 기대가 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피자는 생각보다 느끼하지 않았다. 물론 콜라나 와인이 필수긴 했지만,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곁들여진 이탈리아식 고기는 피자의 느끼함을 더하게 했지만, 도우나 치즈의 정도는 나름 익숙한 맛이기도 했다. 물론 나는 유럽에 와서 특정 음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적은 없다. 하몽 샌드위치 정도가 유일했다.


나름 식사를 맛있게 하고 한국 식료품점에 들렀다. 내일과 모레는 점심값마저 아껴야하기에 컵라면과 햇반을 샀다. 한국 식품이 싸진 않지만, 인건비가 들어가는 레스토랑에 비하면 절반값이다. 마드리드보다 소주가 비쌌다. 5유로 정도. 그래도 비싼 값을 감수하면 다양한 한국 식품을 먹을 수 있다. 냉동 호빵이나 여명808같은 숙취해소제도 있었다. 여유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온다면 좀 더 즐기는 여행이 될 듯 하다.


오후 시간 내내 쉬면서 공인인증서 재발급과 일러스트 재설치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아무래도 묶여있던 주식을 처분해야 할 듯하고, 여행 중 틈틈히 이력서를 써야 12월 면접이 가능할 듯 했기 때문이다. PDF 파일로 이력서를 제출하는 습성때문에 일러스트는 이제 내게 필수 프로그램이 됐다.


저녁 먹기전 간단히 요기를 할 만한 빵을 마트에서 구입했다. 어제 구매한 포켓커피는 하루 중 2, 3개를 담배 피우기 전에 먹고 있는데 맛이 기억 그대로다. 초콜릿에 싸여 있는 에스프레소. 초콜릿을 깨물면 에스프레소가 터지며 입안을 감싼다. 강한 카페인과 초코향이 정신을 일깨운다. 역시 커피의 본고장 이태리답다.


아침보다는 저녁이 낫다. 저녁은 고기 반찬이다. 가족끼리 여행온 두 가족과 함께 식사를 했다. 30년 전 남편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와 다시 찾았다는 한 아주머니는 올해 29이 된 아들이 결혼을 한 기념으로 여행을 오게 되었다고 한다. 29에 결혼이라. 난 33살인데. 말없이 밥을 먹었다. 두 가족은 서로 보기 좋다며 눈에 보이는 가식을 떨어댔다. 자격지심인지 방어기제인지 가식과 체면으로 무장한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과 이야기 하는 게 편하게 느껴진다. 유럽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내가 몇살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아니 대학을 나왔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다. 한국은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그 사람에 대한 배경으로 변질된다. 이력서를 구두로 듣고 싶어한다. 나이와 출신 대학, 경력과 직장 등 걸어오고 갖춰온 그 사람의 일명 '스펙'이 한 사람을 설명하는 가치관이 된다. 나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보고 배운게 그렇기에 적어도 남을 깔보진 않더라도 특정 대학,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신뢰와 존중의 감정이 들어선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세속의 굴레. 결국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안고 가야할 수반된 고민인 것 같다.


저녁에는 산책을 간단히 했다. 늘 집 주변을 한시간 넘게 걷던 서울에서의 습관이 유럽에서는 좀처럼 이어갈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유럽의 골목을 배회하는 것이 로마에 와서야 괜찮아졌다. 할로윈이라 얼굴에 분장을 할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마드리드 보다는 아니지만 로마의 밤도 나름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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