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십칠일날

1101_로마 4일차

by Simba

유럽에 온지 2주가 훌쩍 넘었다. 수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내린 현재의 결론은 '변하는 건 없다'이다. 나를 둘러싼 고민은 내 인생을 따라 줄곧 이어져 온 일관된 하나였고, 어쩌면 해결될 수 없는,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스스로의 고통일지도 모른다. 고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성격적 특성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걱정이라면, 그저 내버려두고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매일 잠에서 깰 때마다 같은 고민을 생각하고, 해답을 찾고 만족과 후회를 반복한다. 삶 자체가 지옥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벗어날 수 없는 고뇌의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스스로가 안쓰러울 뿐이다.


비가 '억수로' 내렸다. 핑계삼아 밖을 나가지 않았다. 내려치는 빗소리를 들으며 숙소에서 몰래 담배를 태우는 재미가 있었다. 한인마크에서 개당 0.3유로에 파는 믹스커피를 타서 마셨다.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믹스커피를 사 마신다는 건 우스꽝스럽지만,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믹스커피가 그리운 것은 한국인이라면 당연지사다. 저녁에 있는 밋업 모임에 예약이 되어 있었다. '비가 와서 못 가겠다'. 두려움과 긴장감에 홀로 핑계를 대본다. 지난 몇년간 '마음 불편한 일'은 하지 않았다. 죽을 동 살 도 노력해도 바뀌는 건 별로 없고, 스트레스만 많이 받을 뿐이다. 힘들면 피하고, 재밌고 자신있는 일을 즐기며 사는 게 낫다. 판단은 옳았다. 고민하는 사람은 평생 고민만 하며 산다.


이번에도 마음에 걸렸다. 두 번째지만 외국인들과 하는 파티가 두려웠다. 이번에는 '마음 불편한 일'을 하기로 했다. 공지에 저녁을 먹으면 8유로를 내야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저녁을 먹고 8유로를 아꼈다. 장소에 30분을 늦게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은 자리를 잡아 밥을 먹고 있었다. 마드리드와 달리 준비된 레스토랑에서 테이블을 붙여 앉아 있었다. 술을 시켰다. 진토닉 한잔에 7유로. 밥을 먹을 걸 그랬나. 이탈리아 남자 두 명에게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앉으랜다. 역시 나 빼고는 다 백인들. 긴장감에 땀이 난다. 안이 약간 덥기도 했다. 이름과 출신을 물어보고 멀뚱히 앉아 있었다. 괜히 왔다. 마드리드와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베로니카' 여자 한명과 남자한명이 옆자리에 앉았다. 이탈리아 놈들은 여자에게 관심이 참 많다. 선입견일수도 있지만 두 이탈리안들은 베로니카에게 시종일관 웃으며 질문을 했다. 다행이었다. 가운데 앉아 질문을 거들며 대화에 껴들었다. 분위기가 좋아지고, 친구와 통화를 하고 오니 이탈리아 친구들은 집에 가고 없었다. 담배 한 갑을 다 피고 왔냐는 독일 친구말에 웃으며 통화를 하고 왔다고 했다. 홍콩 여행객 '지지'와 온갖 유럽사람들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역시 재밌다. '마음 불편한 일'은 힘들지만 결과가 좋다.


내일은 로마를 떠난다. 베네치아로 간다. 베네치아에서는 내내 비가 올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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