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4_베네치아 2일차
앤티크하우스. 내가 머문 베네치아의 한인민박이다. 20여일만에 한인민박 도미토리를 처음 경험했다. 잠을 잘때도, 방귀를 뀔 때도, 자기 전 로션을 바를 때도 신경 쓰이는 게 한두개가 아니었다. 숙소의 아침은 소문 이상이었다. 민박집의 대표 메뉴인 부침개부터 된장국, 고기, 각종 반찬 등 스물을 갓 넘은 스탭들이 한 요리라고는 믿기질 않았다. 정갈하고 담백해서 지친 여행객들의 허기를 달래기 충분했다. 밥을 먹은 후 민박집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베네치아 '본섬' 투어와 '부라노섬' 투어를 나누어 이야기했다. 부라노 섬은 20유로를 내고 배 이용권을 끊어야 한다. 다들 섬에 들어올 때 2일, 3일권을 끊어 들어오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일단 걸어서 할 수 있는 본섬투어를 택했다. 알려준 장소는 순서대로 들렀다. 꼭대기에 무료 전망대가 있다던 백화점과 비알토 다리를 넘어 열린다는 시장은 일요일이란 특성상 볼 수 없었다. 그 외 몇개의 성당과 미술관도 유료 입장이라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basilica dei frari'카페는 찾아 맛을 봤다. 티라미수와 커피를 시켰다. 사실 커피보다 티라미수가 궁금했다. 오늘 두개의 티라미수를 먹었는데, 둘 다 한국의 티라미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하던 매장의 카페에서 먹던 티라미수가 낫다는 생각도 했다. 티라미수는 그저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제일인 듯 하다. 그래도 인생 커피는 건졌다. 이곳의 커피는 처음 먹어본 맛이었다. 바실리카 커피는 기본적으로 아이슈페너와 비슷하지만, 양이 적고 크림의 농도가 굉장히 진하다. 맛이 깊고 크게 달지 않아서 한번에 들이켜도 거부감이 없었다. 위에 뿌려진 설탕은 커피의 감동을 배가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프랜차이즈라는 바실리카는 티라미수보다 커피였다. 여기와서 이 커피를 다시 먹을 기회가 또 있을까. 돌아오는 길 빵을 동그랗게 만 '루스티코'를 먹었다. 모짜렐라 치즈와 채소, 햄 등을 넣은 루스티코는 샌드위치를 닮았지만, 길에서 먹기 한결 편했다. 6유로, 한국 돈으로 8천원 돈이다. 숙소로 오는 길 배를 타고 다른 섬을 가볼까 고민을 했다. 비가 우두둑 쏟아졌기에 무리라고 판단하고 마트를 갔다. 와인을 한 병 샀다.
사장이란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나이를 묻고는 말을 놨다. '형'이랜다. 성격이 호탕해 보였다. 호탕해 보이지만 눈치를 많이 보고 생각이 많은 과였다. 커피를 먹자고 해서 따라 나갔다. 오늘 새로온 다른 방 여자 여행객과 함께였다. 담배를 태우며 커피한잔을 했다. 가장 맛있다던 커피는 바실리카보다 못했다.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달변가였다. 술자리가 잦았다는 민박집은 지금은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
숙소로 가니 어제 인사한 같은 방 사람이 새로 온 여행객 둘과 반갑게 인사를 했다. 거실 식탁에서 작업을 하던 나는 멀뚱히 쳐다봤다. '아는 사이인가 ... '
사온 티라미수와 와인을 꺼내 마시기 시작했다. 시끌벅쩍 떠들던 세 사람도 저녁거리를 사왔는 지 와인과 음식을 펼치고 앉았다. 숫기 없어 보이는 여자 여행객 하나도 자리를 잡았다. 오프너가 없어 코르크 따개를 따지 못하길래 말을 걸었다.
선뜻 오프너와 젓가락을 주고, 우리는 이미 앉은 한 테이블 위에 '합석'을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동참하고 '한인민박'의 진정한 재미를 봤다. 와인을 한병 두병 마시고, 만난지 채 2시간이 되지 않아 오빠 동생 사이가 됐다. 각자의 연애이야기도 꺼내고, 여행지에서 겪은 재밌는 일화도 안주가 됐다. 사장님이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분위기에 하우스 와인 한병을 주셨다. 각자 자기 소개를 시켰다. 호칭 정리를 하고 끝맺을 시간을 정해준 뒤 사장님은 물러갔다.
11시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한국의 여느 모임과 다르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다. 몇일이 지나면 볼 일 없는 서로라는 사실은 굳이 지워내고 현재 같이있음에 집중한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재밌고 유쾌했다.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이다. 그 많던 모임도 나를 중심으로 성향과 취향이 비슷한 좋은 사람들을 기반으로 형성됐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와인으로 거나하게 취한 오늘은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