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5_베네치아 삼일차
억수같이 비가 왔다. 베네치아는 바다 위 건설된 도시라 밀물과 썰물이 있다고 한다. 밀물 때는 비가 오면 거리에 물이 범람하기도 하는데, 100cm가 넘어가면 그렇다. 항상 이 100cm가 기준이 되고, 몇일 전 한국에서도 보도된 '베네치아 홍수'는 수십년만에 찾아온 이상기후로 폭우가 내리며 수면이 160cm에 다다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은 그 높이가 120cm로 예상됐다. 즉, 길에 물이 20cm나 차오른다는 말이다. 집에 있어야겠다. 어차피 다른 섬으로 가지도 못하니, 핑계대고 집에 있기로 했다. 여행지에서는 안나가는 것도 핑계가 필요하다. 호텔이 아닌 이상 완전한 혼자는 없었다. 오후 잠시 비가 그치자 티라미수를 사러 간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을 집에 머물렀다. 결국 저녁시간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다. '재밌게 좀 놀아라'. 숙소 사장님의 한 마디에 가슴이 쓰렸다. 한인민박을 잡고 동행을 구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다른 여행객들의 눈에 혼자 머물고 구경하고 탐방하는 내 여행은 단연코 '재미없는' 루트임에 틀림없다. 나의 정적인 재미는 타인의 동적인 재미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동적인 재미는 나에게 부담일 뿐이다. 클럽에 가서 춤을 추는 것보다 골목 어귀 조용한 술집에서 친구와 잔을 기울이는 게 편하고 모르는 사람과 짝지어 여행을 다니는 것 보다 혼자 우울한 여유를 즐기는 게 위로가 된다. '재미없다' '재미없는 사람'. 다수의 힘으로 개인의 즐거움을 재단하는 건 또 다른 전체주의적 폭력이다.
하루를 온전히 휴식에 몰두하고 저녁 술자리를 가졌다. 본섬 투어를 했다는 다른 친구들은 다른 여행지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최고로 잘 나온 사진들을 보여주며 행복해하는 그들을 보니 사진을 목표로 여행을 하는 보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 2, 30일 여행한 멤버들이라 집이 그리운 듯 했다. 이미 한국행 비행기 표를 알아봤다는 친구부터 이제 곧 집에 간다면 행복해하는 멤버까지. 지쳐하는 건 다 똑같은 듯 하다.
숙소 스태프 같다며 놀려대는 아이들과 내일이면 헤어져야 한다. 한인민박에서의 또 하루는 이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