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이틀째

10/17_브뤼셀 1일차

by Simba



둘째 날. 영국의 아침은 듣던 대로 센치했다. 비행기 시간을 놓칠까 몇 번을 뒤척인 끝에 새벽에 일어나서는 컵라면에 밥을 말아먹는다. 냄비나 전자레인지 없이 햇반을 데우는 법을 터득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여행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낭만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버스를 타러 간다. 몸은 런던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과거에 있다.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여행의 좋은 점은, 잡생각의 소멸이다. 버스가 예정된 시간을 지나 보이지 않는다. 연착인가. 장소와 시간까지 확인했는데. 다시 한 번 나를 믿어본다. 난 나를 믿거나 안 믿는 교착점에 서 있다. 한 편으로 나의 아둔함이 빚어낸 실수의 재현을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영특함에 기대기도 한다. 긴장은 집중을 만들고, 집중은 흥분을 만든다. 순간적이지만, 잡생각이 사라지고 곧 정신이 맑아진다.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돌발 상황들이 여행객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생각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다.

벨기에의 첫 저녁거리


난 무사히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복귀했다. 생각보다 히드로는 작다. 깔끔하지만 대형 공항의 모습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미리 체크인을 해둔 덕에 빠른 수속이 가능했다. 짐을 부치고, 물을 빼앗겼다. 옆에서 발을 동동 굴리는 한국인 여자애들이 보인다. 여유로운 나와 대조적이다. 우월감을 느낀다. 우월감을 느끼는 스스로가 한심스럽다. 시간이 많이 남아 면세점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탁받은 선물들을 둘러보고, 카페에 들러 라떼를 마셨다. 맛있다. 특별하진 않다. 비행은 만족스러웠다. 영자신문을 읽다 재미를 느낀다. 창가에서 촌스럽게 사진을 찍어댄다. 이제 남의 시선을 견뎌낼 나이가 됐다. ‘뻔뻔’보다는 ‘당당’에 가깝다. 브뤼셀은 런던보다 어렵다. 시민들은 친절했고, 영어를 쓰면 긴장한 듯 보였다. 할 줄 알지만 능숙하진 않았다. ‘남들보다 낫다’ 이런 사악한 감정에 기분이 좋다. 북역에는 흑인이 많았다. 동양인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한 대학의 테러 소식을 접했다. 한 편으로는 테러로 내가 사라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다. 죽고 싶다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 같고, 사라지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숙소 근처로 왔다. 담배가 맛있다. 주인은 친절했고 영어가 서툴렀다. 숙소 앞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빨래를 했다. 의무감으로 브뤼셀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