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 젤러, <더 파더>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지하는 동물, 그보다 인간을 잘 수식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지는 인간의 고유 영역이자 특권이라 생각하지만, 이는 단순히 기억에 의해 발생되는 능력일 뿐이다.
인지는 기억 때문에 생겨나고, 인간은 기억하기에 인간답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지는 필수적이다.
시공간에 대한 인지가 사라진다면, 우리의 의식은 우주를 떠돌고 말 것이다.
치매라는 질병이 인간의 기억을 얼마나 앗아가는지 알 수 없지만, <더 파더>는 안소니를 통해 그 고통을
일부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안소니에게 flat, 즉 집은 공간이다. 시계는 시간이다.
안소니는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노인이고, 계속해서 시간과 공간을 잃어버린다.
그에게 시간은 순서대로 흐르지 않고, 공간 역시 올곧게 멈춰있지 않는다.
안소니는 자신의 집에 계속 머물려 하고, 시계를 지키려 한다.
무슨 연유인지 집의 모습은 계속 바뀌고, 낯선 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시계는 자꾸 사라지고, 겨우 찾기는 하지만 다른 이들이 왠지 훔쳐갈 것만 같다.
안소니의 편집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루시는 앤의 동생이자, 안소니의 막내딸이다.
루시의 죽음은 안소니에게서 망각된 사건이고, 그녀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그리운 딸로 남는다.
안소니는 루시를 화가로 기억하지만,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루시가 그렸다는 거실의 'The Pirouettte'는 평원에서 빙그르르 도는 소녀의 뒷모습이다.
영화는 치매를 앓는 안소니를 일인칭으로 묘사한 연유로, 시간의 흐름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특성을 잃는다.
안소니는 늘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하지만, 매일의 상황은 돌발적이고 예측불가하다.
하루는 10년째 앤과 살고 있다는 사위 폴이 출현하는가 하면, 또 하루는 5년째 동거 중이라는 앤의 또 다른 남자친구 폴이 등장한다.
어느날 장을 보고 돌아온 앤은 전혀 다른 얼굴이고, 이에 안소니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저녁 반찬거리인 닭을 전해받은 앤의 남편은 주방으로 향하고, 타인이 되어버린 딸에게 폴이 누구인지 묻자, 앤은 자신에게 남편이 없다 말한다.
'신의 장난'과 같은 안소니의 일상은 갈수록 험난하다.
앤의 남자친구 폴은 안소니를 적대시하고,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거냐며 추궁하기에 이른다.
진실을 짐작조차 쉽지 않은 앤과 안소니의 일상에서 겨우 유추해보자면, 안소니의 증상은 점차 심해지고, 지친 앤은 안소니를 시설에 맡길지 고민 중인 것 같다.
앤은 최대한 안소니를 보살피려 하지만, 그녀는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현실로 돌아와, 남자친구 제임스와 파리로 이사를 생각한 앤은 안소니를 간병인에게 맡기려 한다.
만약 안소니가 간병인 안젤라와 잘 생활했다면, 안소니는 자신의 집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안소니의 강한 자존심과 편집증은 앤이 아닌 누구도 그를 돌보게 두지 않았고, 시계 도둑으로 내몰린 '좋은 간병인' 안젤라는 떠나고 만다.
두 번째 간병인 로라가 실제하는지, 안소니의 상상 혹은 바람인지 알 길은 없다.
둘째 딸 루시를 똑닮아 그녀를 연상케하는 로라는 영화에서 안소니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행복이다.
로라가 면접에서 합격하고 첫 출근날, 설레이는 마음의 안소니는 로라의 얼굴마저 바뀌자 당황한 나머지 현실을 부정해 버린다.
앤은 안소니의 증상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시설에 모시기로 결정한다.
기억을 잃은 안소니는 과연 인간일까?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은 무엇일까?
인간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인간은 의식과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된 개체라고 자신을 인식하지만, 영화를 보며 이 모든 것이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를 기억하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을 기억하기에 내일이 있다.
어제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인지는 없을 것이다.
인지가 없다면 나와 너에 대한 인식이 없을 것이고,
인식이 없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한때 코끼리 같은 기억력을 가졌던 안소니에게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자칫 기억, 그리고 인지가 없어진다면
어쩌면 우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게 한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첫 구절은 이러하다.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이건 정말 현실일까?
아니면 그저 환상일까?
내가 언젠가 모든 기억을 잃는 날이 온다면,
시공간을 인지하지 못하고 우주를 떠돌게 된다면,
내가 누구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그 모든 게 중요할까?
안소니는 흐느끼며 시설의 간호사 캐서린에게 말한다.
"I feel as if i'm loosing all my leaves"
"마치 내 모든 낙엽이 다 떨어지는 것 같아"
인생은 낙엽을 잃어가는 과정일까
그 모든 낙엽에 희노애락이 있는 걸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은
회환 때문에 더욱 슬픈,
루시가 그린 'The Pirouette'처럼
빙글빙글 도는 시공간에서 고통받는 안소니가 안타까운,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더 파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