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영업
그 여섯 번째 이야기
제대할 때 즈음의 나는 정장 한 벌 없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아버지께서 정장 한 벌과 구두 한 짝을 사주셨는데, 일년 쯤 지나고 옷은 빛이 바래고 구두는 밑창이 닳았던 기억이 난다. 실적은 낙제일지언정,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S캐피탈의 영업 2팀은 나를 포함해 총 7명이었는데, 팀장님과 사원 여섯의 아주 가족적인 조합이었다. 앞선 이야기에서 말했듯, 이 팀은 내가 입사하기 전 실적으로 일등을 찍었던 '전설의 팀'이었는데, 전년도 실적이 가장 좋아서 보너스로 여행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팀은 남자 여섯과 누나 한 분이 홍일점으로 끼어 있었고, 다들 한 가닥 하시는 아주 기센 형, 누나들이었다. 팀장님은 항상 웃으면서 농을 치셨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팀장 자리에 가려면 사원 시절 실적이 어마무시해야 하는 것이었다.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순범(가명)이 형님은 호랑이 같은 자태에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와세다 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범상치 않은 분이셨다. 기석(가명)이 형님은 팀장님처럼 웃음이 많고 인자한 유부남이셨는데, 알고 보니 술을 마시면 성격이 변하는 반전의 인물이었다. 태호(가명) 형님은 소싯적 한 주먹 하셨을 인상과 풍채 그리고 말투를 가졌는데, 항상 팔자 걸음으로 걷고, 뒷주머니에 두툼한 지갑을 넣고 다니곤 했다. 지혜(가명) 누나는 예쁘진 않지만 매력적인 얼굴과 성격을 가진 분이셨다. 특히 누나는 항상 나를 '어린이'라고 불렀는데, 누나 나이가 당시 20대 후반 혹은 서른 정도로 기억하니, 스물 셋 남자 아이가 어린이로 보였을 법도 하다. 마지막으로 화순(가명)이 형님은 나와 함께 입사한 동기로, 나이가 지금의 나만큼(서른 넷으로 기억) 많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시다 영업직을 도전했다고 했다. 돌이켜 보면 정말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의 조합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해병대, 아니 해군 정신으로 제 2의 아르바이트 역사를 쓰게 된다.
피가 철철 끓습니다!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믹스 커피타기와 회의 준비였다. 물론 다 같은 영업사원이기 때문에 (막내이긴 하지만) 내가 누구 커피 심부름을 하거나 하진 않았는데(간혹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출근 커피는 일종의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대출 영업 회사에서 회의란 전략보다 동기부여의 목적이 강했다. 결국 팀장은 팀원들을 북돋여서 실적을 올려야 했고, 팀원들 실적이 올라 팀 전체 실적이 오르는 것이 팀장의 인센티브, 즉 연봉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팀장님은 우리를 윽박지르기 보다는 주로 다독이는 편이었는데, 회의랍시고 앉아 있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우리 팀에는 주로 순범, 기석, 태호 형님의 소개 영업과 지혜 누나의 출처 모를 실적(아마도 역시 소개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 화순 형님의 다이렉트 영업으로 실적을 채워 나갔다. 초보인 나와 화순 형님은 거래처를 뚫기가 쉽지 않아서 늘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영업장을 돌아야 했고, 영업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형님들과 누나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나와 화순 형님은 외근이었는데, 더운 여름 날에 자켓을 입고 가죽 가방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이지 싫은 일이었다. 그 당시 나는 담배도 태우지 않았기 때문에, 외근에 재미를 전혀 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항상 외근을 하고 돌아오면, 팀원들끼리 밥은 같이 먹으러 다녔다. 영업직의 장점은 더치페이 따위는 없다는 것이었다. 영업팀이라는 조직은 돈이 항상 많아서, 밥이나 회식 따위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부산의 점심은 주로 돼지국밥이었고, 나는 서면에서 주로 일했기 때문에 1번가 돼지국밥 골목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도 나의 서면 1번가 최애 돼지국밥 집은 당시 자주 가던 '포항 돼지국밥'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 부산 여행을 계획 중이신 분이라면 '포항 돼지국밥'집에 꼭 가보길 추천한다.
영업직은 사무직과 달라서 실적을 채우면 조기 퇴근도 가능했고, 점심 '밥자리'에서 소주 한 잔 정도도 허용되곤 했다. 점심을 먹다 유독 출출한 날이면 팀장님께서는 소주 한 병을 시켜 한 잔씩 돌리곤 하셨는데, 난 체질상 술을 좋아하고 또 잘 마시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팀에 잘 녹아들 수 있었다.
여담으로 부산으로 여행가는 지방 사람들에게 맛있는 돼지국밥 집을 선택할 수 있는 팁을 하나 소개하려 한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마치 다른 지역의 중국집과 같아서, 조금 과장을 보태어 골목마다 한 곳씩 있는데, 그만큼 맛집도 많고 맛이 없는 집도 많다. 맛집 돼지국밥 집의 특징은 꼭 큰 솥이 있다는 점이다. 혹여나 가게 내부든 외부든 눈에 띄는 곳에 큰 솥이 없다면, 들어가서는 안된다. 맛집 돼지국밥집은 아침부터 이 솥에 수육을 넣고 종일 끓이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그 국물의 진함이 다르다. 맛이 없는 곳도 국물은 뽀얗게 나올 수 있지만, 아무래도(아마도) 조미료를 썼을 것이기 때문에 맛은 흉내낼 지라도 그 깊이는 따라올 수 없다. 부산에서 돼지국밥 집을 간다면, 반드시 눈에 띄는 곳에 큰 솥이 있는 지 확인하자.
그렇게 먹고 마시며 일을 하다보니, 왜 그렇게 형님들의 배가 나오는 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군대에서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고 제대를 했기에 당시 68키로 정도밖에 나가지 않았는데, 영업직을 하다보니 배는 어느새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와 띠동갑 정도의 나이차가 났던 화순이 형님은 그 당시 정말 아저씨처럼 느껴졌는데, 왠지 모르게 형님은 늘상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내 나이가 먹어 어느덧 형님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버리니, 이제 그 기분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바라던 꿈을 포기하고 바라지 않던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 그리고 바라지 않던 현실에서도 최선을 다해 항상 웃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실패한 인생에 대한 가혹하리만치 잔인한 처벌과도 같다. 화순이 형님은 나만큼이나 영업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형님은 너무나 마음이 착하고 여린 사람이었다. 당시 사무실에 있었던 날고 기는 영업사원들을 생각해보면, 사람을 돈으로 보는 부류의 직원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에게 고객은 실적이었고, 실적은 곧 등급이었다. 신용등급이 높은 고객은 대출 한도의 일정 부분이 돈으로 돌아오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대출 실현이 되지 못하는 고객은 그저 '허탕'일 뿐이었다. 그래서 신용조회를 돌려본 후 '대출 불가'가 뜨는 고객은 더 낮은 금융권으로 소개해주곤 했는데, 이렇게 낮은 금융권에서라도 대출이 발생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저 답이 없었다. 그래서 흔히들 그런 고객을 '쓰레기'라고 부르곤 했다. 즉, 신용이 높으면 '고객', 신용이 낮으면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사람을 대하다 보니 자연스레 상대를 돈으로 구분하게 되는 면도 있었는데, 이런 면이 화순이 형님과 같은 성격에는 결코 부합할 수 없는 것이었다.
*7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