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영업
그 다섯 번째 이야기
만 21년 하고도 9개월을 산 시점에, 난 두 가지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 처음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편의점이었고, 두 번째는 아무도 하지 않는 대출 영업이었다. 편의점처럼 대출 영업 역시 두 곳을 거쳤다. 한 군데는 S캐피털 사(社)였고, 다른 한 군데는 L캐피털 사였다. 무슨 차이가 있겠냐 하겠지만, S캐피털은 외국계(영국계) 회사로, 자본이 많고 회사 분위기도 자유분방했다. L캐피털은 전형적인 한국 회사였는데, 연령층부터가 S캐피털에 비해 높았다. 그래서인지 두 회사는 영업의 활동 범위 자체가 달랐다. S캐피털은 주로 소개 영업을 했고, 영업 사원 평균 연령이 낮아서 그런지 일명 '다이렉트' 영업이라 불리는 고객 대면 영업은 선호하지 않았다. 우선 영업 활동을 해본 입장에서 영업의 종류를 좀 알려드리자면, 다이렉트 영업, 전화 영업, 소개 영업, 브로커 영업 등이 있다. 다이렉트 영업이라 하면, 보험 영업장 등 영업을 하는 다른 업종의 영업장에 찾아가 대출을 권유하는 것이다. 가장 원초적인 영업의 형태라 할 수 있는데, 가히 가장 많은 경험치를 쌓을 수 있고, 거절은 기본에 심하면 욕설을 얻어먹기 일쑤였다. 전화 영업은 말 그대로 주어진 DB(데이터 베이스, 금융권에서는 고객 DB라 불리던 일종의 개인 정보가 떠돌곤 했다)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대출을 권하는 것이다. 보통 다이렉트 영업이 무서운 여성 영업사원이 많이 하던 형태였는데, 전화 너머로 쏟아지는 욕설이 두려우면, 자동 응답 따위를 걸어두고 영업을 하기도 했다. 거래처 영업의 경우 다른 대출 영업 거래처를 뚫는(?) 방식이다. 대출은 모두 같은 급이 아니라, 1, 2, 3 금융권 등으로 나눠진다. 이를 테면, 은행은 1 금융권, 캐피털이나 보험사는 2 금융권, 저축은행은 3 금융권 그리고 사채라 불리는 개인 대출은 4 금융권으로 구분된다. 사실 이 구분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달라서, 보통은 3 금융권까지 구분하고 4 금융권은 사사로울 사(私) 자를 써서 사금융권이라고 한다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구분되는 대출계에서는 1 금융권에서 대출이 안 되는 손님을 2 금융권으로, 또 2 금융권에서 안 되는 손님은 3 금융권으로, 그마저도 한도가 안 나오는 손님은 사금융권으로 소개하는 관례가 있었다. 소개 영업은 그야말로 스킬이 필요한 분야였는데, 만약 은행, 캐피털, 저축은행 등 몇 군데 거래처를 만들어 두면 사무실에 앉아 상당히 편하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단, 소개 영업의 단점은 받은 수수료의 절반을 나눠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브로커 영업은 소개 영업과 비슷하다. 대출 대리점을 차리고 직접 대출 고객을 모집하는 개인 업자들이 꽤 있었는데, 이 업자들은 대출 회사의 영업 사원들을 고정해서 일감을 주곤 했다. 이런 업자들과 거래처를 만들어 두면 역시 소개를 받아 영업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소개 영업을 시도했으나 당시만 해도 군대를 막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었기에 진입 장벽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그래서 '맨 땅에 헤딩' 식으로 영업하는 걸 선호했는데, 그런 점에서 S캐피털보다는 L캐피털이 오히려 적성에 맞았던 듯하다. 그렇다고 이런 '다이렉트 영업'이 편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원초적인 방식이라, 어느 사업장이고 찾아 들어갈 수 있는 배짱과 용기가 필요했다.
대출 카드 필요하세요?
L캐피털에 근무하면서 한국 사람들이 머리가 기발(혹은 디테일)하다고 생각한 것이, 소액 대출을 카드 형식으로 만들어 팔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출이라고 하면 거부감을 가진다. 하지만 카드는 왠지 거부감이 덜하다. 대출은 빚 같지만, 카드는 카드인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식당 같은 가게에 신청서 한 장 달랑 들고 들어가 "L캐피털에서 나왔는데요, 혹시 대출 카드 필요하세요?"라고 물으면 고객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 당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상당히 많은 수의 자영업자들이 당장 끌어 쓸 대출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돌려 막아야 할 현금이 누구나 조금씩은 필요한 것 같았다. 이 대출 카드는 우선 이런 식으로 관심을 끈 뒤 신청서에 정보를 받고, 이후 신용 조회 후 승인이 나면 고객에게 카드가 발급된다. 이 카드는 신용 카드가 아니라 대출 카드기 때문에, 고객이 필요할 때 현금을 인출해서 사용하면 그때 대출이 발생되는 것이었다. 당장 실적은 없지만, 한 달 혹은 두 달 뒤 고객이 대출을 하게 되면 나도 그만큼의 수익을 얻게 된다. 대출 영업을 하면서 그나마 조금의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래도 노력만큼 따라오는 다이렉트 영업의 쾌감인 것 같다. 나는 금융 영업장부터 일반 식당까지 닥치는 대로 들어가 이 카드 설계를 하곤 했는데, 그 방식이라는 것도 무식해서, 매일 한 지역을 정해서 그곳의 영업장이란 영업장을 모조리 도는 식이었다. 부산 바닥은 영업으로 뛰긴 좁아서, 6개월 정도 돌고 나면 같은 곳에 다시 가서 해야 하곤 했다. 보험 영업장 같은 곳은 상당히 기센 아주머니들이 많이 계셨는데, 어린 남자 영업사원이 와서 대출을 권하면 귀엽게 봐주기도 하다가, 어떤 날은 온갖 소리를 지르며 쫓아내기도 했다. 사실 파리 날리는 식당에 들어가서 대출을 권하는 것은 여간 곤욕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더운 날에도 정장을 입고 일해야 했기에 갑갑함도 한 몫했지만, 힘든 사람에게 동아줄이랍시고 빚을 권유한다는 것은 참 못할 짓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파리 쫓는 하는 사람과, 솔깃해서 한 마디 더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할당량이 있었기에, 미끼를 던지고 반응이 있으면 열과 성을 다해 설명을 하곤 했다.
글쎄, 대출 영업을 포함해 영업직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폭력과 같다. 물론 영업이라는 것은 현대 비즈니스의 핵심이다. 결국 모든 상업 활동은 판매를 기본으로 하기에, 영업은 어느 회사에서나 꽃이다. 영업을 잘한다는 것은 매출과 수익을 높여주는 것이고, 이는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다. "그렇게 좋은 물건이면 당신이 사지?". 그렇다. 영업 사원이 파는 물건은 잘 안 팔리는 물건이다. 잘 팔리는 물건은 매장에 진열만 해두어도 고객이 알아서 구하러 온다.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팔러 다니는 것이다. 잘 팔리지 않는 것을 파는 것. 그것이 영업 사원의 역할이다. '실적이 좋은 영업사원'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해서 회사와 자신에게 많은 돈을 벌어다 준 사람이다. 당시 내가 팔아야 하는 물건은 대출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굳이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대출을 팔아서 빚을 내게 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돌이켜 보면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데, 그 때문에 1년 반 정도 되는 대출 영업사원의 역할은 여전히 고통으로 남아있다.
*6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