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영업
그 여덟 번째 이야기
난 올해 서른여섯이다. 1986년 범의 해에 태어났고, 띠가 세 번 돌았다. 그 띠가 두 번 돌았던 2009년, 나에겐 크나큰 고민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가당치도 않은 그 고민은 바로 '나이'였다.
나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당시에도, 지금도, 그리고 나중에도 '늙음'에 대한 고민은 여전할 것이다. 내가 이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은 군 제대 직후인 24살 무렵이다. 돌이켜 보면 스물셋과 스물넷의 느낌은 참 많이 달랐는데, 어느 날 그 다름을 인식하자 전에 없던 두려움이 몰려왔다(사실 두려움보다는 초조함에 가까웠다). 글쎄, 군을 제대하면 으레 학교로 돌아가던 또래 친구들에게 이러한 초조함이란 서른이 훌쩍 넘어 찾아오는 것이겠지만, 꼴에 직장인이라며 서류 가방 둘러매고 서면 바닥을 누볐던 나는 어딘가에 적(籍)을 두지 못한 탓에 심리적으로 아주 불안한 청년이었다. 적을 두지 못한다는 것, 그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다. 학교와 군대 이후 소속된 곳이 없다는 것은 갓 성인 이름표가 붙은 영업사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최근 들어 십여 살 차이나는 동생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 역시 소속감에 대한 불안함을 많이 이야기한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소속에 대한 갈증을 터놓지 않지만, 고민을 들음으로, 경험이 해석해서 소속에 대한 불안을 알려준다. 불안과 초조함은 진로의 실수를 낳게 마련이다. 그 실수란, 대개 무턱대고 눈앞의 기회를 잡는 것이다. 나 역시 '늦었다'는 생각이 단초가 되어 더욱더 일에 붙잡히기 시작했다.
<인셉션>의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생충이라 말한다. 생각은 그 탄생부터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잊고 싶을수록 더욱 깊고 확장되어 숙주를 장악하기 때문이다. 나이에 대한 불안에 휩싸이자, 나는 무언가를 빨리 이뤄야 한다는 조급증에 다다랐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그러한 조급증은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더욱 내달리게 하는 좋은 채찍질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룰 수 있는 능력도, 경험도, 무엇보다 비전도 없는 24살의 영업사원에게 조급증은 그저 오판의 식량과도 같은 것이었다. 영업 2팀의 팀원들은 적게는 4살부터 많게는 20살 가까이 차이 나는 형, 누나들이었다. 나는 당시에 24살로 돌아가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지금 생각하면 상당히 호기로운 질문을 그들에게 하곤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공부'였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면 내 대답은 단연코 '투자'가 되겠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그런 순수함이 존재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 누구도 나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강하게 조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나 역시 조급함이라는 손에 붙들려 시간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사무실에 멀뚱히 앉아 있거나 하릴없이 무의미한 전단지만 뿌리며 '일'을 한다는 안도감에 취해 있었지만, 20대의 시간은 내가 억만금을 벌어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긔띔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무척이나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