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영업
그 아홉 번째 이야기
대출 영업을 하며 느낀 많은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 참 높은 건물이 많다는 점이었다. 나는 부산에서도 회사들이 밀집한 서면, 연산동 등의 영업장을 주로 돌았는데, 보험 등 영업장이 모여 있는 건물은 각기 다른 특색이 있었다. 이를 테면, 서면의 알*** 생명 건물의 경우 경비 아저씨가 항상 지키고 있어서 잡상인(당시 나는 누가 봐도 잡상인이었을 것이다)처럼 보이는 인간이 잠입하면 곧장 수상한 얼굴과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 어디 가는 거요"라며 취조를 하곤 했다. 그래서 건물들은 입장이 편한 혹은 불가능한 곳으로 분류되곤 했는데, 입장이 편한 곳은 이미 너무 많은 영업사원이 왔다 가서 그들의 명함과 각종 판촉물들이 주인 없는 책상 위 가득하곤 했다.
형사 모드 경비 아저씨만큼 뚫기(?) 어려운 곳이 아파트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브랜드 아파트는 인기가 좋지만,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은 것이 전원적인 단지 분위기와 달리 동으로 입장할라치면 마치 '미션 임파서블'의 주제곡이 들리듯 등 뒤 따가운 시선과 함께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경비 아저씨의 경고 방송이 흘러나오곤 했다. 당시에는 도대체 입주민과 잡상인의 차이를 어떻게 아는 걸까 싶었지만, 돌이켜 보면 무언가 한 가방(전단지) 들고 온갖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기웃거리는 사내가 적잖이 수상스러웠을 듯하다. 혹자는 모르는 아파트 공동현관을 어떻게 들어가냐는 초보적인 궁금증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인간이란 항상 방법을 찾게 돼있으므로 입주민이 들어갈 때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가는 스킬을 넘어, 그 타이밍마저 완벽한 수준이 이르게 되었더랬다. 어쨌든 삼엄하지 않은 경비의 빌딩과 아파트를 전전하다 별 다른 성과가 없자(미안하게도 그렇게 오는 연락은 늘 대출이 이미 너무 많아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나도 자연스레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좋은 학군, 좋은 직장, 좋은 아파트에서 머물며, 일하고, 살고 싶어 하는 이유를 그 당시 직간접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