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영업
그 열 번째 이야기
일 년 간의 열정과 고민, 조급함과 초조함에 떠밀린 열심(熱心)을 뒤로하고 S캐피탈을 떠나 L캐피탈로 이직했다.
앞서 말한 듯 두 회사는 분위기가 전혀 다른 대출 영업소였고, 그 이유는 영업 사원들의 연령대에 기반했다. 3-40대가 주를 이루던 S캐피탈과 달리, L캐피탈은 그야말로 당시 내 부모님 나이대의 장년층 영업 사원들이 즐비했다. 이미 나는 일 년 간의 영업 활동 때문에 지친 영혼이었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패잔병의 마음이었다.
L캐피탈에서 속하게 된 팀의 노 팀장 역시 아버지와 거래를 하는 '인맥'이었으며, 난 그렇게 노 팀장의 팀원으로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 L캐피탈에서 시작한 첫 날을 잊을 수 없다. S캐피탈의 화순이 형님처럼 이곳에도 '동기'가 존재했는데, 바로 건보(가명) 형이었다. 건보 형은 당시 30대 초반(혹은 중반)의 가장이었는데, 화순이 형님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신입 사원이었다. 우선 해병대 출신인 건보 형은, 180이 훌쩍 넘는 키에 이목구비가 부리부리하고, 마초형의 사내였다. 목소리도 저음에 호쾌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했는데(당연하지만), 형과 나는 함께 입사한 동기로서 서로 의지하며 영업을 하곤 했다.
다른 동기 형도 한 분 계셨지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척 어리숙하고 일적으로 서투르셔서, 노 팀장이나 건보 형에게 혼쭐이 나곤 했다. 어쨌든 우리 셋은 이렇게 L캐피탈 서면 지점의 신규 영업 사원이 되었고, 첫 출근과 교육이 시작되었다. 노 팀장은 지금 생각해도 괴짜였다. 스스로 자평(自評)하기를, 자신은 똑똑하진 않지만 꾀가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에 십분 공감하는 것이, 고졸 출신의 노 팀장은 한 유명 보안 업체를 거쳐 L캐피탈 사에 입사해 많은 실적을 쌓고 팀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었다. 말투며 행동은 유식(有識)과 거리가 멀었지만, 눈치와 판단은 누구보다 빨랐다.
첫 교육부터 당분간 우리는 아침마다 노래 한 곡을 반복 제창했는데, 그 제목은 <거위의 꿈>이었다. 아침마다 사무실 한 구석에 노래를 틀어놓고 다 큰 성인 세 명이 따라 부르려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이 특이한 아침 교육의 개발자 역시 노 팀장이었다. 노 팀장은 나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전 하곤 했는데, 그 시작은 바로 빌딩 영업이었다. 단순 '판촉물 뿌리기 식'의 S캐피탈 빌딩 영업과 달리, L캐피탈은 '대출 카드'라는 도구를 활용한 다이렉트 영업을 주 무기로 삼았다. 외국계 기업과 한국계 회사의 현지 영업 방식 차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현지의 세부적인 환경을 파악하지 못한 외국계는 주로 조직 내 팀이나 개인에게 실적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반면, 한국계는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시장에 다가섰다. L캐피탈의 '대출 카드'는 아마도 이러한 전략에서 비롯한 상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빌딩 영업에서 노 팀장의 지시는 한 건물, 한 층, 한 사무실, 한 명에게 대출 카드를 꼼꼼히 설명하고 영업하는 것이었다.
첫 건물이 양정동 어디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수차례 포기하고 싶음에도 내가 끝까지 노 팀장의 주문대로 영업을 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0장이었다. 난 완주했다는 뿌듯한 마음에 노 팀장에게 보고를 했지만 대답은 다음 건물로 가라는 냉소적인 말 뿐이었다.
영업사원은 스트레스를 돈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이런 종류의 직업은 비단 영업이 아니더라도 많다. 이를 테면, 주식 트레이더의 경우 남의 돈으로 미래를 알 수 없는 거래를 통해 불확실한 수익을 거둬야 한다. 영업처럼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만큼 돈과 비례한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업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물론 능력과 재능도 갖췄지만, 그보다 중요한 덕목이 바로 멘탈이다. 제 아무리 그 방면에 재능이 있다 해도 매일 밀려오는 스트레스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기는 멘탈이 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난 멘탈을 다잡기 위해 매일 새로운 곳에 들어가기 전 스스로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곤 했다. 당시까지 군인 정신이 박혀 있었는지 나름의 '무대포' 투지로 무기력한 몸을 이끌곤 했다.
내 영업 시절에도 전성기가 있었는데, 바로 이 L캐피탈 사 재직 초반이다. 나는 동기부여를 위해 일종의 '자신과의 약속'을 했다. 그것은 대출 카드 발급의 일정량을 스스로에게 할당하는 것이었다. 그 대가는 혹독해야 했는데, 갓 제대한 예비역들에게 최고의 악몽은 부대에서 잠을 깨는 자신이다. 나도 그러한 심정이었기에,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군대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다짐을 하고 스스로에게 배수진(背水陣)을 쳤다.
이 다짐 내지 약속은 꽤나 효과적이어서, 나는 어떻게든 하루 두 장 이상의 대출카드를 발급하려고 발버둥 쳤고, 항상 당하던 거절이나 호통 따위는 개의치 않게 되었다. 첫 카드 발급 건 또한 잊을 수가 없는데, 장소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아마도 한 지하상가였던 듯하다) 어리바리하게 상품을 설명하는 사원에게 모종의 믿음으로 자신의 개인정보를 선뜻 적어 준 한 고객은, 그렇게 나의 첫 대출 카드 발급 건이 되었고,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끓어오름이 가슴 밑부터 시작됨을 느낄 수 있었다. 계단을 오르며 주먹이 불끈 쥐어지기도 했는데, 영업의 맛이랄까, 그 매력은 굳이 찾자면 바로 이러한 성취감에서 오는 게 분명하다.
그렇게 하루 두 장 작전은 보기 좋게 성공을 이어 나갔다. 하루 열 장에 가까운 실적을 올리기도 했고, 두 장에 그치기도 했지만, 그렇게 쌓인 카드 실적 고객들이 추후 실제 대출을 실현시켜 1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매출이 발생되면, 약 3프로(내지 4프로)의 돈이 월급날 입금됐다. S캐피탈은 건수가 많지 않지만, 발생되는 대출의 금액이 큰 반면(500만 원 이상, 주로 천에서 삼천만 원 사이의 대출이 많았다), L캐피탈 사는 일종의 박리다매 식 영업이 가능했다.
그렇게 나는 노팀장의 스파르타 교육 덕에 다이렉트 대출 영업을 어느새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