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_파리 사일차
유럽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있다. 이상하게 계속 피곤하다. 시차가 없는 게 아니라 새벽에 잠들던 서울에서의 습관이 유럽에서 초저녁에 잠드는 좋은 습관으로 발현되고 있다. 푹 쉬고 싶다던 바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느낌이다. 오전에 빨래를 해야 겠다는 계획이 살짝 틀어졌다. 찾던 샴푸가 전 숙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호스트에 물으니 샴푸 사진을 보내 왔다. 한 시간 반거리, 지하철 비용을 따지면 시간 대비 새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뭔가 찝찝하다. 분명 며칠을 생각하며 스트레스 받을 게 뻔하니 돌아가서 가져오기로 했다. 이틀만에 보는 중국계 프랑스 부부는 여전히 반갑게 맞아줬다. 빠트린 것 없는 지 다시 되묻는 그들에게 '아마도'없다고 하고 시내로 돌아왔다. 안되는 날인지, 샴푸가 가방에서 열려서 일부가 흘렀다. 이 정도는 그저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됐다. 말할 수 없지만 언제부턴가 쉽게 우울해 지지 않게 됐다. 몇 년만 일찍 그 예민함이 사라졌다면, 좋았을 걸.
시내를 둘러보다 고픈 배를 붙잡고 일식당으로 향했다. JCB 카드 사용 가능여부를 미리 물어봐 둔 'KINTARO'로 가기로 했다. 중간 몇몇 일식집이 있었지만, 처음 정한 곳으로 갔다. 돈코츠라멘 한개와 공기밥을 주문했다. 맛은 기대이상 이었다. 서울에서 먹던 라멘과 별다른 게 없었다. 10년 전 후쿠오카에서 먹었던 라멘 만큼은 아니지만 유럽 기호에 맞게 느끼할 줄 알았는 데 라멘 본연의 맛이 잘 살아있었다. 꽤 만족스럽게 식사를 하고 JCB 카드를 내밀었지만 사용이 되지 않았다. VISA 카드로 계산을 했다. 일식집이라고 다 되는 건 아니구나. 소화도 시킬 겸 시넬리에 화방을 갔다. 크로키 북을 하나 샀다. 화장실을 묻자 점원을 못 알아들은 듯 했고, 옆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영어로 대답을 했다. 화방 옆에 위치한 바에 화장실이 있다. 그럼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묻자, 고객이 아니면 사용이 안된다고 했다. 그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어쨌든 답변 자체에 감사했다. 프랑스에서는 공용 화장실 사용이 힘들다고 들어서 애초에 집 외에는 용변 볼 생각도 없었다. 하루에 화장실을 자주 가지 않는 체질이 유럽과는 잘 맞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를 들렸다. 타월 하나와 물, 피자 등 몇가지를 사고 10유로가 약간 넘었다. 한국 돈으로 15,000원. 물가가 비싸지만 식료품은 싸고, 식당은 비싸지만 커피는 싸다. 한마디로 재료값은 싸지만 인건비가 비싼 듯 했다. 어딜가든 서비스는 좋지 않았다. 급여는 말 그대로 노동의 대가로 여기는 듯 했고, 부가적인 서비스의 필요성은 혁명의 나라답게 중요치 않은 듯 했다.
카드를 긁고 점원이 뭔가를 하라고 했다. 불어를 못한다고 하자, 더 크게 이야기했다. 몰랐다. 위축되니 영어도 버벅거린다는 것을. 이 프랑스 인간들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전혀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공용어 따위는 그들에게 공용이 아니었다. 눈치로 비밀번호인 것을 알았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확인을 누르니 계산이 됐다. 메흑시! 짜증스럽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점원을 보며 웃음이 났다. 뭐 저리 여유가 없을까. 프랑스에서 불어를 쓰지 않으면 상대하지 않는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에서도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중국인들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타 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그들이 아직도 세계 선진국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한편으로 겸손으로 일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에 못한 빨래를 저녁에 했다. 우왕좌왕하던 중 한 커플이 도와줘 빨래를 마칠 수 있었다. 10년이 넘었건만 군대가 생각났다. 3.5유로에 건조기는 무료니, 꽤 괜찮은 편이었다. 자기 전 그림도 하나 그렸다. 인스타에 올리는 그림들이 쌓여 내 꿈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생산'을 생각했다. 예술가는 만들어 내야 한다. 글이든 그림이든 계속 쏟아내야 한다. 다행히 소통 창구가 많은 요즘 세상은 프린랜서 예술가에게 좋은 환경일지도 모른다. 불안함을 안고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