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_파리 5일차
유럽에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아이러니하게 라면이다. 가격도 싸고, 배도 부르면서 느끼한 유럽 음식에 비해 속이 불편하지도 않다. 비용 절감이 절실한 나에게 라면은 구세주 같은 존재다. 불현듯 찾아온 불안감에 구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하게도 현재 숙소는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종일 숙소에 있으면, 특유의 우울함이 다시 들 것 같기도 해서 시내로 갔다. 유명한 스타벅스 오페라에 갈까 생각도 했지만, 몇일 전 들렀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까운 곳으로 가기로 했다. 세 군데가 1킬로미터 반경에 모여 있었는데, 한국과 달리 자리가 많지 않았다. 프렌치 스타벅스답게 실내 좌석과 야외 좌석이 균형있게 배치되었고,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하는 카페족이 있긴 했지만, 2, 3층까지 넓게 공간을 쓰는 한국과 달리 단층에 한정된 좌석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별 수 없이 기차역에 입점된 스타벅스를 갔다. 콘센트를 꽂을 수 있는 플러그와 넓은 나무 좌석이 마음에 들었다. 이게 웬일. 와이파이를 물으니 “no wi-fi”라는 대답뿐이었다.
이미 주문을 한 뒤라 커피만 마시고 가기로 했다. 이름을 묻기에 “Simba”라고 하니 직원이 웃으며 “yes”라고 답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별명이고 친구들이 계속 불러서 이름처럼 됐다고 알려줬다. 아시아에서 온 심바라니, 웃기긴 하겠다.
아이스 라떼는 서울보다 연했다. 스타벅스 특유의 스모키향도 없는 듯했다. 프랑스의 커피들은 대체적으로 한국 것보다 약하다. 그래서 유럽은 에스프레소가 좋다. 하루에 두 잔을 마셔도 밤을 설치거나 하진 않는다.
기대 이하였던 노트르담 대신 기도를 올릴 만한 성당을 찾았다. 가까운 곳에 ‘사크레쾨르’라는 성당이 있었다. 저녁에 알았지만 호스트가 일전에 추천한 곳이었다.
성당은 상당히 높은 언덕위에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가면 하늘이 부서지듯 빛이 쏟아지고, 이내 파리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성당의 초입길에 도달한다. 나름 웅장하지만 노트르담보다 소박하고, 인파가 붐볐지만 기도할 공간은 충분하다. 밖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파리에서의 가을은 그 하늘이 더 높았다. 성당에 들어가자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실내 건축이 날 반겼다. 앞쪽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올렸다. 마리아 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한번 더 기도를 했다. 마음이 위로됐다. 둘러보는 와중 악세사리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팔찌나 목걸이를 하고 싶었다. 심플해 보이는 팔찌 하나를 사고, 2유로를 더 내고 초에 불을 붙였다. 기도를 하면 기분이 좋다. 돌아가면 세례를 받아야겠다.
내려오는 길에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몽마르뜨 언덕을 모른 채 걸었다. 그토록 바랬던 동네 시장이 나왔다. 조심스레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대충 보고, 일찍 집에 돌아왔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다. 호스트의 핫스팟으로 새벽까지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밀린 일기들을 쓰고, 지원할 만한 회사를 몇 개 찾았다. 피곤하지만 나름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