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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한 미아 Sep 11. 2016

기억이 휘발되기 전 추모하기

for 은임언니

“어쩜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월요일 늦은 저녁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너머로 들려온 첫 문장. 그리고는 이어졌다. “은임이가 죽었단다.”

이 말은 나를 현실에서 비현실로 옮겨놨다. 지금까지도.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소원하게 지냈던 고종사촌 은임언니. 사이가 나쁜 것이 아닌, 단지 무심하게 지냈던 사이였다. 간간이 친척들을 통해 소식을 전해들을 뿐. 그러나 날 때부터 연결된 혈육.


화요일 아침 도착한 장례식장. 영정사진 속 언니는 10년 전, 20년 전, 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인지 언니의 죽음이 현실 같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힘없이 일어서며 “유나 왔구나…”라고 말하는 고모의 맥없는 목소리. 퉁퉁 부은 눈으로 계속 우는 고모를 껴안으니 그제야 언니의 죽음이 피부로 와닿았다. 망연자실한 고모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외동딸만 사라진 잔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요일, 8월의 마지막 날, 언니와 우리가 육신으로 만나는 것도 마지막이었다. 31세에 요절한 언니가 왜 죽었는지 알 수 없어 아침 일찍 부검을 마쳤다. 3주 후에야 나올 부검 결과를 뒤로한 채 입관후 화장터로 이동했다.


벽제 화장터.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딸을 보며 고모부는 목놓아 울었다. 이제 어떻게 사냐는 고모부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고모는 입을 악물었다. 온몸으로 울었다. 하늘에선 하루 종일 비눈물이 흘렀다. 화장이 종료됐다고 알려주는 친절한 말투의 안내 방송은 잔인하고 냉정했다. 통곡 소리를 덮을 정도로.


나보다 키가 컸을 언니가 말 그대로 한줌의 재가 되었다. 정성스레 봉안함에 유골이 담기는 모습을 우리 모두 담담히 바라봤다. 이유도 모른 채 딸을 떠나보내고 가슴에 묻은 고모와 고모부. 앞으로는 이를 악물고 살아낼 거라고, 그러니 오늘만 울겠다며 흐느꼈다.


이렇게 젊은 사람의 장례는 드문 일이라 그런지 장례 절차 내내 울음 소리가 유난히도 컸던 것 같다. 특히 나이 지긋한 분들이 슬퍼했다. 누군가의 부모일 분들. 언니가 천수를 누리지 못했음을 진정으로 안타까워했다.


고모부는 언니가 고생만 하다 갔다며 자신의 부모됨을 죄스러워했다. 언니의 친구들이 언니는 행복하게 잘 지내다 간다며 추억담을 잔뜩 늘어놓은 후에야 비로소 자책을 그쳤다. 

나도 혹시나 나의 부모님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잘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면 우리 모두에게 오늘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언니의 짧디 짧은 삶이 얼마나 허망할까 싶었다. 어쨌든 나는 오늘까지만 슬퍼할 테니 천국에서 만나자, 언니.


2016 / 08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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