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 리뷰
<밀정>
관람일 : 2016년 9월 10일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전무(全無). 이 단어가 맞는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영화를 보든,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어딘가를 방문하든 뭔가 느낌이 있다. 영화의 경우엔 재미가 있든 없든, 감동이 있든 없든. 그런데 '밀정'을 본 후에는 사실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었다. 영화가 밋밋하다거나 별로여서가 아니고 오히려 감정이 차갑게 식어서 이성적이 됐기 때문이다.
'밀정'을 포함한 역사 기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늘 드는 생각이 있다. 역사책에 한 줄 쓰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페이지가 뜯어졌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의 책이 얼룩졌을까. '밀정'을 크게 봐서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의열단이 조선총독부를 폭파하기 위해 상해로부터 폭탄을 들여왔다.' 이 한 줄에, 한 문단의 행간에 얼마나 많은 사건, 인물, 삶, 시간이 내포돼 있을까.
'밀정'의 근간이 되는 사건도 우리가 이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이고, 교과서든 어디서든 만났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각색을 했기에 새로운 이야기와 인물이 추가됐지만, 어쨌든 결말을 알고 보는 소설과 다름 없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밀정'은 흥행요소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속이 시원한 액션신, 화려한 특수효과, 마음이 아릿한 멜로, 아름다운 영상미 혹은 시청각적으로 자극적 혹은 성적인 영화도 아니다. 그나마 권총 전투신 정도. 국민배우라는 송강호, 최근 충무로를 가장 뜨겁게 달구는 공유라는 유명 배우가 있지만 배우만 보려고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찾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관객들의 최고 관심사는 아마도 마음을 들끓게 하는 '일제시대'라는 배경, 좀 더 속되게 말하면 '국뽕'일 거라 사료된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내'가 끌리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조화롭다. 어느 하나 특출나지 않지만 어느 하나 크게 뒤쳐지지도 않는다. 하나 꼽자면 감정적으로 크게 건드리지 않은 채, 1920년대 당시 사람들 사이의 의심, 충절과 변심의 줄타기를 보여준 것이 좋았다. 변절자를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호하지도 않고, 의열단의 업적을 미화하거나 부풀리지도 않았다. 때문에 극 중 인물 어느 누구 하나 욕하지 못한 채, 나라면 어땠을까를 수십 번 되뇌였다.
난 교과서나 역사책을 그동안 너무나 가볍게 그리고 얕게 읽어왔다. 보여지는 그대로만 읽고 받아들이고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내가 무심코 넘겨버린 페이지의 무게감은 실제로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그러하듯.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한 건, '일본을 미워하자' 식의 유치한 발상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둡고 부끄러운 과거, 거기로부터 이어져 온 지금...을 살고 있는 나와 다른 사람 모두 더 사랑하고 더 진지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