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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평한 미아 Aug 12. 2021

06. 이별 극복에 뭐가 좋을지 몰라서 일단 다 해 봄

필사적으로 하니까 극복은 되더라... 다른 게 힘들어서 그렇지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후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의 앞에서 괜찮은 척, 태연한 척 했지만 사실은 앞이 캄캄했다.

깨어 있는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했고, 잠들고 싶은데 잠도 오지 않아 괴로웠다.

자려고 누우면 후회되는 일만 자꾸 생각나고, 자책하며 울다가 지쳐 잠들기를 반복했다.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에 일어나서는 정신은 없지만 몸이 기억하는 출근길을 가고, 껍데기만 회사에 앉아 있고, 누구랑 눈만 마주쳐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면벽수행 하듯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뭐라도 하자 싶어서 다양하게도 했다. 필사적으로!

*이별 직후부터 시간 순서대로

*중첩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를 하기도 하고, 하나에 집중하기도 했다



1. 꼬박꼬박 식사하기

처음으로 알았다. 음식에서 아무 맛이 안 느껴질 수 있다는 걸.

좋아하던 것을 먹는데도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열심히 먹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슬퍼하는 것, 이별 극복에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헤어진 김에 다이어트 하려고 했으나 실패...

입맛은 생각보다 금방 돌아왔다.

'밥만 잘 먹더라' 노래가 왜 나왔는지, 왜 히트곡이 됐는지 깨달았다)




2. 방 배치 바꾸기

지금 집으로 이사할 때, 그 전 집 이사할 때... 늘 그가 함께했고, 모든 짐을 나르다시피 했다.

집에 뭔가 고장나면 와서 고쳐주기도 하고, 밖에서 데이트하기 어려울 때는 우리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곤 했다.

집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래서 집이 가장 괴롭고 외로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집 계약기간은 남았고, 이 집은 꽤 마음에 드는데 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방배치 바꾸기!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몰라서 계속 구매를 미뤘던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 매트리스도 샀다.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꽤 새로운 느낌이었다.


방 배치를 바꾸고나니 가려져 있던 못이 밖으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인 고흐의 '아몬드 나무'를 걸었다.



3. 노트북 구매

내가 사용하던 그의 노트북을 돌려주고 나니 나에게도 새로운 노트북이 필요했다.

그는 전자기기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노트북, 휴대폰 등 살 일이 있으면 그가 다 찾고 알아봐주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의지할 수 없으니 내가 사야 했다.


그래서 그래픽카드, RAM, 메모리 등 여러 용어들을 공부하고 적당한 가격에 좋은 노트북(사실은 그의 노트북과 같은 브랜드의 비슷한 것)을 구매했고, 각종 프로그램을 스스로 설치했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 획득☆




4.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

사람들과의 관계에 미련도 후회도 없던 나였는데 소중한 사람을 잃고나서야 "있을 때 잘하자"라는 진부한 말을 떠올리게 됐다.


내가 가장 함부로 대하면서 늘 미안했던 두 사람, 남자친구와 엄마.

이제 남자친구는 없지만 엄마는 영원히 내 엄마이기에, 엄마 그리고 가족들에게 더 잘 하자고 결심했다.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그래서 2주에 한 번 할까말까 했던 전화를 주 3~4회씩 하고 있고, 매달 본가에 방문하고 있다.

처음에는 웬일로 전화했냐고 묻던 엄마가 이제는 기다렸다는 듯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곤 한다.


그리고 내가 서운해서 일방적으로 멀리했던 친구.

앞으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자니 괜히 허전하고 계속 마음이 찜찜했다.

친하게 지내지 못하더라도 사과는 꼭 해야겠다 싶어서 연락했는데 반갑다며 답장이 왔다.

만남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결혼식 같은 자리 빼고 개인적으로 만난 건 4~5년 만인 것 같다. 만나서 진심으로 사과했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아주 잘 지내고 있다.


그 외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 미안하다는 표현을 열심히 하고, 대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관계에 굳이 애쓸 필요 없다 생각했는데 막상 하고보니 별 거 아니더라. 그리고 오히려 좋더라.


그리고 내가 적당히 했던 만큼 다른 사람들이 더 애써서 나와의 관계를 잡고 이어왔다는 것도 알았다. 참 고맙다.

앞으로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나도 소중히 여기기로 약속♡




5. 주식

이별에는 주식이 특효약이라는 말에 생애 처음으로 주식 계좌를 만들고(이게 제일 어렵더라) 주식의 세계로 입문했다.

아는 게 없어서 일단 우량주부터...


아직까지는 거의 수익이 없다시피 하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그리고 경제 공부, 주식 공부는 삶에서 중요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삼성, LG야 힘을 내...! 2021.8.12 기준...



6. 심리 상담

남자친구와의 이별과 더불에서 회사에서도 이슈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인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다 떠나서 마음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해봤다.

(온라인으로 검사지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통화를 하면서 상담을 받는 방식)


나는 MBTI든 뭐든 검사하면 늘 '마이웨이'형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

자극 추구는 높고, 위험회피도는 낮고, 남의 의견보다는 내 생각과 판단을 따르고(좋은 말로 소신 나쁜 말로 고집),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마치 야생을  떠도는 자유인 같다고 했다.


성격을 억지로 바꿀 필요는 없지만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거칠게 대하는 것만 조금 바꾸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말씀 ! 거칠게 대한다는 건 막말하거나 못되게 군다는 게 아니라 '이 정도는 해야지!' '(힘들고 위험해도) 해내야지!' 라는 태도를 말한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말해도 된다"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다.




7. 그와의 추억에 장소 방문

추억의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계속 가게 될 곳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기에, 그와 함께 갔던 곳들을 다시 방문하면서 애도했다.

동대문, 한양도성길, 한강에서 함께 자전거탔던 곳, 우리 동네 주변 산책했던 곳들, 회사 주변 골목들...

그와 함께 등산하다가 과일을 나눠먹던 곳에 혼자 앉아 그때 기억도 되새기고, 사진도 다시 찍어보며 그에게 전해지지 않을 고맙다는 말을 자리마다 남겨두고 왔다.



8. 그 외

이 외에도 새롭게 시작한 것이 많다.

심리와 정신세계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고, 이전에는 쓸 데 없다 여겼던 다양한 강연 영상도 보기 시작했다. 막상 공부하니 유익하고 배울 게 많은데 예전에는 이런 강연이나 공부보다도 '내가 더 잘났다'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참으로 자만했고 교만했다.


이직준비도 시작해서 자소서,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는 요즘에도 계속 손보고 있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도 호시탐탐 지켜보고 찾아보고 있다.


결혼은 (최소 몇 년, 혹은 영영...?) 물 건너 갔으니 '혼자서 잘 사는 삶'을 위해 부동산 공부도 시작했다. 자취를 15년 정도 했기에 그동안 이사를 참 많이도 다녔다. 이젠 이사가 지겨워서 작고 허름하더라도 내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랫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연락하며 이야기도 나눴고, 건강한 몸을 위해 영양제도 새로 구입해서 잘 챙겨먹고 있고, 필라테스도 쉬다가 다시 시작해서 주 2회 꾸준히 나가고 있고, 틈틈이 걷고 있다.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서 (결혼준비 할 걸 생각해서 머릿결을 지키기 위해 하지 않았던) 탈색도 했다. 혼자서 바다도 다녀왔다.


독서광이었던 내가 스트레스로 난독증이 와서 글에 집중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많이 회복되어 도 많이 읽고 있다. (책을 읽는 속도가 책을 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 함정)


나 홀로 바다




돌아보니 나 자신이 참 기특하다.

나를 포기하고 막 살고 싶을 때도 많았고, 구차하게 울며불며 연락하고 싶기도 했다.

회사도 그만두고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지난 시간을 버텼고 통과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건 이런 의미인가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채워가는 시간이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의 어려움을 풀어준다.  




남들이 으레 하는데 나는 하지 못한, 아니 하지 않은 것도 있다.

그와 함께 쓰던 물건을 정리하는 것과 사진 정리.


일단 커플 아이템 같은 물건을 정리하는 건... 너무 많아서 할 수가 없다. 다 정리했다간 일상생활이 어렵고, 가계가 휘청일 정도다.

그리고 사진은 앞으로도 영원히 정리하진 않을 것 같다. 그 시절의 내가 소중하기에 잊고 싶지 않고, 그 때의 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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