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vs (이 회사에서) 네 번째 대표님 맞이.. 뭐가 더 빠를까
이직 준비를 제대로 시작한 요즘.
5년 간의 회사 생활을 복기하는 중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5년 동안 3명의 대표님을 만났고 지금은 4번째 대표님(M&A 진행 중)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보다 2배는 많은 팀장님들과 함께했고, 20배는 많은 직원들과 짧게 길게 일했다.
드나듦이 워낙 많은 회사다 보니, 나는 겨우 5년 다녔을 뿐인데 현재 70명 가량의 직원 가운데 오래 다닌 사람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회사 생활은 아니다.
얼마 전 새로 오신 우리 팀장님(올해에만 네 번째 팀장님 ㅋ_ㅋ)이 면담 도중에 "어떻게 이렇게 오래 버티셨어요?"라고 물어보시길래 나는 "저는 그냥 있었는데 대표님이 계속 바뀌었어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대표님이 바뀌었다. 그리고 대표 리더십의 변화에 따라 회사가 변하다 보니 마치 새 회사를 다니는 것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퇴사할 위기가 찾아오면 대표님이 바뀌고,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었다가, 사람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인 상황에 실망을 하고, 다시 무기력해지고... 또 그만둘 만 하면 대표님이 바뀌었다. (약 2년 주기로 이 과정이 반복...)
이러한 조직의 변화는 때로는 급진적으로, 때로는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스며들듯 직원들(나 포함)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꺼번에 직원이 물갈이 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속한 마케팅팀의 경우에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처럼 한 명 한 명 서서히 줄어들었다. 12명이었던 팀원들이 하나 둘 퇴사하는데 추가채용이 거의 되지 않았고, 정신차려보니 어느새 나와 새로 오신 팀장님 포함 4명만 남아 버렸다.
추가 채용이 없었던 데는 (많은 회사가 그렇듯)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되었다.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수익을 개선한다는 명목 하에 가장 먼저 줄어든 것은 광고비였고, 그에 따라 마케팅 업무 범위가 축소됐다. 마케터로서 커리어 성장의 폭도 좁아지자 팀원 수가 하나 둘 줄었다. 인원이 줄자 마케팅 업무는 더 좁아지고... 악순환의 반복.
생각 없이 시키는 것만 하면서 편하게 지내기에는 좋은 회사가 됐으나 발전이 없고, 결국 나는 길고 긴 노잼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꽤 큰 기업이 우리 회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으나 이제는 미래에 대한 기대도 없고, 새로운 마음가짐이나 의욕도 없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드디어 이직 준비를 하고 있다. 동료 직원들이 계속 퇴사하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나만 남겨지는 것 같고, 나만 뒤쳐진 것 같아 초조했다. 스스로가 무능력하고 한심해 보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엇보다 (감사하게도) '나의 안일함'을 선명하게 보게 됐다.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게을렀고, 철이 없었다. '직장인으로서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이제서야 진지하게 하고 있다.
지금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직무를 완전히 바꿔서 온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마케팅 업무에 적응 하느라 정신 없었다. 그 이후 리더십이나 조직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을 보냈다. 이 회사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일은 다 겪으면서 내가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대표님, 상무님, 본부장님을 찾아가 해보고 싶은 업무를 요청하기도 했고, 하기 싫은 일도 울며 하며 끌려가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성장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목표 없이 일하느라 놓쳐버린 아쉬운 기회들, 아깝게 흘려 보낸 시간이 이제야 보인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현재의 상황을 직시하게 되어서, 편안함과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음에 감사하다.
나는 주변 상황이 어떠하든 휩쓸리거나 흔들리지 말고 내 속도대로 걸어가려고 한다.
내일도 퇴사하는 우리 팀 동료가 있고, 그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 내가 떠안게 되었고, 해야 할 일은 2배가 되었다. 회사에서는 바쁘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는 요즘이다. 그리고 연말까지 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그럼에도 집에 와서 공부를 하고, 업무 정리를 하고, 이직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시기를 기회 삼아서 성실하게, 차근차근,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동료이자 직원으로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