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쓰기 1일] 이야기의 시작

by 초래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연사를 섭외해야했고, 나의 제안에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영화찍고 이런 사람 말고, 진짜 농민 말이에요. 농사짓는 농민." 하지만 그는 진짜 농민이었다. 농민이자, 지역 거주민이었고, 사업가이자, 사회혁신가였다. 농법을 가르쳐주는 연사가 아니라면야, 우리가 해야하는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해줄 사람이 그였을 것이다. 곧 다가올 미래를 더욱 생생하게 말해줄 사람으로.


사람을 부를 때마다 수도 없이 이런 일을 해야했다. 주제를 좁히고, 주요한 꼭지들을 잡아 행사의 플로우를 짠다. 각각의 주제에 알맞은 사람들을 제안하는데, 사실 B안이라는 것은 없다. A안이 실패하자마자 그 행사는 망한거다. A안의 사람들과 A안의 주제가 있는 것이고, 그게 어그러지면 B안의 사람들과 B안의 주제를 만들어야 한다. 내 속도 모르는 이는 계속 A의 주제에 대한 A안 B안을 요구했다. 뭐 이해는 된다만, 그리고 어떤 상황인지도 알겠다만, 어짜피 A안을 선택해야 좋은건데, 굳이 B안을 달라고 해서 스스로 헷갈리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달까. ..그걸 구별할 줄 알기나 하나?


제안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제안을 하고 제안을 검증받아야 했다. 검증받기 위해서 제안한 사람들을 증명해내야했다.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그들의 삶으로서 그들의 삶을, 능력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증명에는 어디어디의 대표라던지, 무슨 박사, 저서, 어떤 위원회 활동 등의 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스스로 뭔가를 일구어낸 사람이라면 (그 뭔가는 주로 검증을 요구하는 곳에서 알리가 없기 때문에) 응당 저서라도 있어야했다. 언제는 저서를 넣어달라고 하더니, 이런 사람들의 프로필에 저서를 넣으면 요새는 아무나 책을 낸다는 투로 교보문고 홈페이지 같은 곳에서 그 저서를 찾아본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내가 추천한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고 그들을 섭외하기 위해서 '증명'해내는 과정에서 이 일을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렇게 어떤 참여주체를 '증명'해내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하는 행정의 태도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


어째뜬 내년엔 후다닥 논문을 쓰려고 한다. 논문의 주제는 두루뭉실하지만 한국의 공공사업에 시민참여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에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중앙정부로 시민참여가 국민참여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모순들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서울로 한정하고 서울에서 진행했던 여러 사업들의 경험을 녹여서 쓸 것인지 아직 범위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행정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아주 비판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비판적인 부분은 뭐 몇가지 경험이 있지만, 사실 결국은 똑같은 얘기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생각나는 대로 써봐야겠다.


1. 우선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사람이 자신이 발언할만한 시민 주체임을 행정에게 스스로 증명해야한다는 지점이다. 발언할만한 시민주체라는 것은 그때그때마다 달라진다. 어떤때는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순수한 시민', '순수한 청년'을 바란다. 하지만 어떤 때는 대표성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을 바란다. 이건 사업담당자나 용역사의 태도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다.

(갑자기 예를 들기가 어렵다고 느껴서 겁이 난다..)


2.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순수성'을 증명해야한다. 나는 나 개인의 이익엔 하등 관심이 없고, 지역과 나라에 대한 애정과 충성으로만 이 자리에 왔다. 나는 회의비따위 받으러 온게 아니다. 쿠쿠다스 먹으러 온 것도 아니다. 라는 것을 이상하게 증명해야하는 문화. 나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시민으로서의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에 기준을 두고, 시민으로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순수성을 증명하거나 전시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 사업이나 워크숍엔 공지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3. 이렇게 행정이 이야기하는 '진짜 시민'을 그렇게 갈구하다가도 어느날은 그런걸 묻는다. "이 사람들이 대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들 말을 들어서 사업을 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그러면,,, 선출로 뽑힌 사람도 아닌 통반장이나, 적십사협의회나, 새마을 부녀회나 이런 곳의 대표들은 대표성을 띈다는건가...? 그럼 대학생 대표 뽑고, 대학생 아닌 20대 대표 뽑고, 직장인 대표 뽑고 뭐 이런식으로 의견을 듣고 있다는 말인가? ...


4. 그래서 대표들을 뽑아서 또 제안을 하면 '이 사람들은 대표고, 자기 일 하는거에나 관심있지, 이런거 진심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또 폄하한다. 기준도 없고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고, 의견을 들어서 기획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전문성도 싸그리 무시한 무식한 행정의 챗바퀴다. 아.. 존나 빡쳐 진짜



여하튼 이런 지점에서 매년 엄청난 분노를 느껴왔는데 어느 순간 또 아무렇지 않아지는 지점이 왔다. 그동안의 분노는 이런 기준으로는 내 또래, 동년배 누구도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없어. 이렇게 낮에는 청순하고 밤에는 잡아먹는 여자친구 바라는 관점으로는 행정비위 맞춰가면서 정책참여못해. 이런데서 오는 분노였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공공성의 기획과 발현에 있어서 행정이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돈내는거 말고는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런일을 겪을 때 크게 화가 나지는 않는다. 다만 행정이 똑바로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공공성은 행정의 성격이 아니며, 공무원이라고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며(수많은 공무원들이 엄청 개인적인 판단으로 공공성을 좌지우지한다.), 개인들이 발현해내는 공적인 영향력을 어떻게 모아내고 확보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사회변화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거라는 것을. 이걸 알아들으려면 우선 지금 무슨 문제가 있는지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냥 그 정도로 목표를 잡기로 했다.


그러면 내 연구 질문은 무엇일까 대체... 시민참여 프로그램의 시민이 요구받는 역할과 자격 이런걸까? 아니면 '참여 프로그램'으로서 시민참여공공사업의 변화, 뭐 이런걸 얘기해야할까?

사실 변천사를 훑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2012년도에 마을이 처음 사업으로 시작되었을때와 이제는 중앙정부까지 국민에게 직접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 난리를 치는 이 상황이 되기까지의 관점. 실제로 사업별로 시민들의 참여는 깊이가 달라졋는지,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확대되었는지. 그렇게 되려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례 사업들을 선택해야할텐데 흠 어렵네.. 뭐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참여콘텐츠'로서 정책사업, 공공사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문화적으로 볼 수도 있을까? 하지만 참여의 방식이 그렇게까지 콘텐츠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무리일까?

걱정은 내가 문화콘텐츠학과인데 이 내용을 어떤 문화콘텐츠이론과 연결지어서 써야할지 전혀 모르겠다. 사실 처음에 금세 쓰겠네라고 생각했을 땐 '불특정한 개개인의 개입' 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들과 지금의 정책사업이 크게 다르지 않고, 기술적으로도 가능해졌고 (굳이 블록체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호응도한다. 뭐 이런 가설을 놓고 쓰면 되지 않을까? 였는데 그러면 ..... 내 사업을 거기에 뭘로 붙이지? 이런 질문이.


물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논문을 쓰는 과정이겠지만.


시민참여사업의 '시민'은 누구인가.


이런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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