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기 위해, 우에노 치즈코 대모님의 논문쓰기의 기술을 읽고 있다. 어제는 자신의 일로 논문을 쓸 경우에 받는 '중립객관성의 신화로부터의 공격'에 대해서 '신경쓰지말라'는 대모님의 말을 들었다. (읽었다.) 그리고 가설 설정에 대해 막연히 어려워하는 지점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읽었다.
가설을 설정하는 것은 '멍청이'라고 말하고 싶은 상대가 있어서다. 참을 수 없어서, 납득할 수 없어서, 그냥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p.100
문제의식을 느낀 그 순간과 상황을 집중하고 다듬어나가면 된다는 말이 힘이 된다.
시대별 변천사를 할 것인지, 세대별을 할것인지, 세대별 중에서도 시대별 변천사를 할 것인지 등 놓고 고민중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도 나왔다. 획기를 구분하는 것의 필요성 같은 것. 내가 생각할 때 한국의 시민 참여가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박원순 이후 3선까지인데 이런 획기구분을 하는 순간 거버넌스 논문이 될 것 같다. 시민참여가 시대가 가면서 어떻게 질적으로 수준을 높이는 것을 도모했는지를 보는 것은 내가 하려던게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순점들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세대별 구분은 어떤지. 세대별 구분을 하려면 아니 세대를 압축하려면 '청년' 씬을 넣어야하는데, 이 부분은 나랑 거리감이 있는 영역이라 좀 어려운 것 같다. 오 지금 생각하니 청년씬에 끼지 못했던 것이 (청년씬에 못끼고 마을씬에 낌..) 내가 오랫동안 앓아온 외로움일수도 있겠다. 지금도 외롭고 그때도 외로웠다. 근데 그렇다고 중장년층으로 갈 수도 없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지만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내 마음속에서 막연히 '그들은 시민'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몇가지 문제를 발견했던 시점이 있다.
1.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 할 때. 유휴공간 사용자의 인건비를 어떻게 주느냐를 놓고 대립하다가 자원활동비를 주게 된 것. 자발적 참여하는 시민에게는 인건비를 줄 수 없다는 것. 자발적참여자라는 것은 없고, 자원봉사자이던지, 용역사라는 개념만 있었던 사건.
"어째서 인건비를 무시하죠"
2. 경기도 도민참여사업 할 때. 지역의 대표성논란. 지역별 대표성 논란.
"그럼 대표는 대표할 수 있어요?"
3. 행안부사업할 때, 행안부의 국민을 대하는 정서와 온도.
"국민은 도깨비가 아니에요."
4. 모든 사업의 홍보방법을 결정함에 있어서 '무작위'에 기대야하는 현실
"결국엔 형성된 공동체 위주로 홍보되는 것, 네트워크 위주로 홍보되는 것."
5. 다시 형성되어버린 '그들만의 리그' 와 그곳에 대한 알러지적 반응
"불리는 사람만 불리워지는 곳에서, 다시 사라지는 다수의 이름들."
흑 십분 지나버려서 이제 그만써야한다. 나갈준비해야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