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풍기 인견이래! 에서 풍기 인견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
평소 생활용품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모던하우스나 자주 같은 리빙샵에 가서, 촉감이 특별히 더 좋은 슬리퍼나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체반같은걸 보며 놀라워한다. 무인양품도 가고, 플라잉타이거 코펜하겐도 간다. 이 수많은 생활용품들이 누군가의 공간에 자기 자리를 찾길 기대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 많은 물건들을 도대체 누가 고민하며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지까지 생각이 미친다. 대부분은 made in china 혹은 made in vietnam 이고, 또 커다란 회사의 디자인팀이 상품기획팀의 직원들과 싸워가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버텨낸 결과겠거니- 만든 사람의 구체적인 얼굴까지는 떠올리지 못하는 편이다.
그날은 당근 거래를 하러 갔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대피하듯 쇼핑몰로 들어갔다. 측면의 작은 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모던하우스가 나왔고, 이렇게나 한방에 쇼핑몰에서 원하는 매장에 온 것은 처음이라 기뻤다. 요새 쇼핑몰은 규모가 너무 커서 입구만 잘 찾아도 쇼핑의 절반은 성공이다. 봄이 왔는가 싶더니 갑작스럽게 여름이 시작되어 모두가 봄이 없어졌다고 소리를 높이던 시절이라,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쨍한 기분의 유리 제품들, 파랗고 푸른 패턴이 넘실대는 패브릭들이 매장을 가득 채웠다. 여름날의 시골 외갓집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적인 라탄 소품들이나, 휴양지의 정취를 집에 들이라고 유혹하는 커다란 파초 조화들도 가득 찼다.
살 것이 있어 들어간 것이 아니었기에 그날 나는 무슨 생각으로 매장을 둘러보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손을 대기만 해도 냉감이 느껴지는 패브릭 제품들을 보니 여름이니 베개 커버를 바꿔야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침대에 꼭 베개를 4개 놓기 때문에 (물론 일어나면 3개는 바닥에 떨어져있다) 단색으로 된 워싱 면 재질의 베개커버 2장과, 인견 재질의 푸르른 화초 패턴의 베개 커버 2장을 샀다. 그날 왜인지 모르게 후라이팬 세트도 사버려서 기진맥진 짐을 들고 돌아온 뒤로 베개 커버는 한 3주 정도 쇼핑백에 쳐박힌 상태로 방치되었다. 그 사이에 정말 찐한 여름이 시작되었다.
자고 일어난 컨디션이 요가를 막 끝낸 듯 지치고, 패드고 배게고 뭔가 미묘하게 축축한 그런 날이었다. 패브릭을 갈다가, 새로 산 베개커버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커버를 꺼내서 가위로 택을 자르는데, 택에 왠 일제 강점기 시절 느낌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유관순 열사의 사진 같은 느낌이었는데, 사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어 택도 그냥 버렸다. 내가 방의 휴지통을 뒤져 다시 그 택을 꺼낸건 바로 고양이들 때문이었다. 새로 간 배게커버를 침대위에 올려놓고는 얼마 지나 다시 침실로 들어갔을 때 마치 자신의 전용 베개가 생긴양 우리집 막내고양이가 의기양양하게 앉아있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번, 침실에 들어갈 때마다 다른 베개도 아닌 꼭 그 인견 커버를 씌운 베개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보고 나니 이건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친환경 농산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다들 그 GMO 옥수수 사진을 알고 있겠지. 다람쥐도 먹다 남기는 그 옥수수 사진. "동물은 답을 알고 있다." 인걸까? (알아요 이거 유사과학인거..) 막내고양이의 픽을 받은 이 배게 커버가 정말 우수한 품질의 인견 제조업체가 아닐까?! 나만 모르는 명품은 아니었나!
나의 논리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수 있다. 겨울에 고양이가 앉아있는 곳이 그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며(a.k.a 전기밥솥), 여름에 고양이가 앉아있는 곳이 그 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라고. 에어컨을 키지 않은 여름, 우리집에서 가장 시원한 곳은 바로 이 풍기인견 베개 위라는 것은 이렇게 증명되었다.
휴지통에서 나온 그 택에는 '(주)루디아' 라는 회사명이 적혀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과 함께 아래 안내가 적혀있다.
주식회사 루디아는 풍기에 위치한 인견 전문 제조업체 입니다.
루디아의 역사는 1934년 선대인 송석홍 사장이
풍기방적이란 상호로 가내 수공업 공장을 설립 후
인견을 생산하여, 현재까지 전통을 이어 온
풍기 인견의 제조사입니다.
풍기 인견의 풍기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서 온 지명이라는 것을 아시는지? 전혀 몰랐다. "여름엔 풍기 인견이래" 라는 문장을 주워듣고 여러번 이야기했지만, 소재를 만드는 식물성 재료라던지 그런게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루디아의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1934년의 사진은 나와있으나, 선대인 송석홍 사장의 풍기방적이라는 업체는 회사의 연혁에 나와있지 않다. 대신 1978년에 '삼용'이라는 상호를 쓴 업체가 회사의 전신으로 나와있다. (주)루디아라는 상호를 쓰게 된 것은 1997년의 일이다. 법인전환을 한지 25년 정도가 된 역사있는 인견 제조업체라고 해도 되겠지?
인견(人絹)은 인간이 만든 비단이라는 한자어를 가지고 있다. 영어로는? 너무나도 익숙한 소재 레이온이다. (유니클로에서 블라우스 및 셔츠는 레이온 소재로 만들어진게 거의 대부분인듯..!) 레이온은 합성섬유같은 이름인데 알고보니 목재펄프에서 추출한 식물성 소재로만드는 천연섬유라고 한다. 풍기 인견의 경우 원단 자체가 부드러워서 공임비가 높아진다고 하니 앞으로 풍기인견 제품을 볼 땐, 부드러운 원단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짜증이 나지만 어마어마한 스킬로 제봉을 하는 어떤 장인의 이미지도 떠오를 것 같다.
작은 회사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았지만, 어째뜬 법인으로 자체 공장과 분사,R&D센터를 가지고 지역명에 자부심을 붙여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라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홈페이지에는 사업분야 중 하나로 특허를 낸 풍기인견이 100% 우드펄프를 원재료로 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써져있다. 이 우드펄프는... 국산인가? 왠지 우드펄프는 인도네시아산이지 않을까? 막연히 이런 추측을 해보며 루디아라는 회사가 생태와 환경에도, 직원의 처우와 노동현장에도, 젠더감수성에도 나무랄 데 없는 기업이어서 즐겁게 소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한줄 적어본다. 하지만 어렵겠지? ^^
어째뜬 루디아와의 이런 만남 덕분에 한국에 이렇게 작아도 자기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내고 있는 생활용품 제조업체 혹은 식품 제조업체가 엄청 많겠구나! 하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에서 D&department를 갈 때마다, 지역별로 이렇게 튼튼한 지역기업들이 자리를 많이 잡고, 자기 분야를 연구하고 발전시켜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마냥 부러웠는데 사실은 나만 모르고 있었겠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이런 회사들을 스쳐지나보내지 말고 하나씩 살펴보면 좋을텐데, 하며 이 글을 시작하고 시작하는 마음을 적어본다.
(주)루디아는 누구나 아는 회사는 아니지만, 나에게 이런 발상의 물꼬를 터준 회사이기 때문에 첫 소재로 선택했다. 앞으로는 뭐가 될까? 생각나는건 이런거다. 머거본 땅콩, 지도표 성경김, 장미칼,,, 등등등...
(주)루디아
관련기사 : 【2021 대한미국 섬유소재 품질대상】 화섬 및 인견직물 부문. (주)루디아
매체는 국제섬유신문뉴스. 루디아가 만든 매체는 아니겠지..?!
정말 세상엔 별의 별 신문이 다 있구나..!
http://www.itnk.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639